독서감상문

연필로 쓰기

여디디아 2020. 8. 25. 18:09

연필로 쓰기

 

김 훈 / 문학동네

 

 

'연필로 쓰기'는 정진규 시인의 시 제목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연필을 집어 들고 지우개를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언제인가 싶다.

문명은 우리를 편리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 일에 게으르지 않다.

연필도 필요없고 지우개도 필요 없다.

컴퓨터만 있으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연필로 글씨를 쓰려면 마음대로 써지질 않는다.

바르고 곧고 예쁘게 쓰고 싶은데 내 의지와는 별도로 글씨는 날아가는 새의 깃털 같기도 하고 기어가는 지렁이의 흔적 같기도 하다.

8월 말까지 평내교회에서는 코로나 19 종식을 기도하며 전교인이 성경 쓰기를 하고 있다.

1인당 주어진 양이 성경책으로 다섯 페이지인데 한글 자라도 틀리면 다시 써야 한다.

그렇게 세 꼭지를 썼다. 지렁이가 지나간 자리 같은 모양새로...

 

'연필로 쓰기'는 김 훈작가의 산문집이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사회, 정치, 문화, 역사적으로 박식하며 날카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섬세하고 따뜻하며 살아있다.

여성 문인들이 표현하는 미세하고 깊은 곳까지 다가가 문장을 만든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문장의 힘은 끈질기고 날카롭다.

 

1부  연필은 나의 삽이다

2부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3부  연필은 짧아지고 가루는 쌓인다

 

1부에서 나오는 '늙기와 죽기..' 를 읽으며 서글퍼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늙음과 죽음'  임에도 남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으니..

친구들의 죽음, 지인들의 부고 등..

늙어가는 친구를 보며 '나'를 발견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청춘남녀들의 연애를 보며 '삶'이 빛나는 것임을 느낄 때마다  나는 조금씩 허전해진다.

 

아가들의 미소와 그 미소를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따뜻함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공을 차며 뛰어가는 소년들에게서 살아있음을 찬양하며, 남녀가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신나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작가를 보며 무엇에도 부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질 않고 긍정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70이 넘으면 꼰대가 되고 이런저런 잔소리와 마땅찮은 일이 많을 텐데 작가는 불편하거나 싫은 모습이 아니고 따뜻하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삶을 보는 시선이 이채롭기만 하다.

늙어갈수록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굳이 부정하기보다 인정하는 것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짐까지 하게 된다.

 

작가는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촛불을 밝히러 가자고 권유할 때 '감기에 걸려서' 라며 사양하고

태극기 집회에도 '감기에 걸려서'라며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자기 인생에 무책임한 것'  이라고 조정래 작가는 말했다.

그렇지만 작가는 정치적인 성향을 글에 나타내지 않는 것이 나는 좋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작가의 책을 끊은 사람도 봤다.

나의 바램은 작가는 작가로서 남아주면 좋겠다.

정치는 책이 아닌 것에서 피력하면 좋겠고, 작가라는 분이 정치에 지나치게 나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70이 넘으신 김훈 작가..

그의 글은 때로 어렵고 때론 따뜻하고 때론 즐겁고 재미지다.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는 이유는 어렵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어쩐지 남성 중심의 글일 것 같아서 머뭇거린다.  

 

이 산문집은 삶이 따뜻하고 즐겁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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