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집안이 휑~~ 하다.
"뭐지? 이 낯설음은?"
동생이 깨끗하게 청소하고 간 집안엔 연극이 끝난 후 남은 정적만이 감돈다.
이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헤실거리며 웃던 준경이가 남긴 선물이 벽 한편에 나란히 붙어 있고
책상 위에 노트와 펜이 벗어놓은 옷가지처럼 놓여 있다.
18일간 온기로 가득하던 집안,
제부와 동생은 나와 서방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지내었고
나와 서방은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에 즐거워하며, 어려울 때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내고
준경이는 새로운 환경이지만 이모부와 이모의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날이었다.
늘 어린애인 줄 알았던 준경이가 어느새 성인이 되고 전문가가 되어 식사 때마다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
우리 몸에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특별히 짠 것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와 짠 것이 몸을 망치게 하는
순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곤조곤 설명해 줌으로 식사를 할 때마다 멈칫거리게 했다.
"어린애 같아 보이는데 설명을 할 때면 너무 똑 부러지게 하는 모습에 대견하며 든든하다"는 서방의 말을 들으며
직장에서 인정받는 준경이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해진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며 이모가 좋아하는 피자를 준비하고 이모부의 핸드폰 케이스가 나달거린다는 이유로 예쁘고 세련된 핸드폰 케이스를 선물하고 이모에게는 예쁜 펜과 노트 그리고 인아와 지유를 위한 분홍색의 펜도 준비했다.
며칠을 혼자 그리던 엽서에 편지를 가득하게 써서 우리에게 감동을 안기며 뭉클하게도 한다.
"이모와 이모부께 편지를 쓰면서 엉엉 울었다"는 말에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딸이 있으면 저렇게 소소한 것들을 챙겨줄 텐데... 늘 부러웠다.
비싸고 좋은 것도 좋지만 작고 소소한 것을 챙겨주는 섬섬옥수를 가진 딸이 얼마나 부러운지...
준후는 독일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공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후 5시에서 9시까지는 잠시의 휴식시간 외에는 온라인을 통해서 꼼짝없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바깥의 일은 덜 궁금했을 것이고, 공부의 능률은 조금 더 높았으리라.
월요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내가 확~ 늙은 기분이다.
묘한 상실감과 허전함이 나를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
준경이를 위하여 과일을 깎고 커피를 내리고, 예쁘게 김치볶음밥을 만들던지, 빵을 만들던지 해야 하는데...
아침에 먹을 것은 가지고 갔을까.
텀블러에 커피는 담아 주었을까?
늦어서 허둥거리지나 않았을까?
아니...
준경이를 낳고 키우고 옆에서 보살피는 이현숙이가 있는데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봄꽃처럼 이쁘던 준경이의 빈자리에, 벚꽃이 지고 난 후 분홍의 빈 집만 남은 것처럼
빈 껍데기만 남아서 나를 울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