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
줄리 입 윌리엄스 /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삶과 죽음, 그 후에 오는 것들
"우리는 건강한 시절에 건강을 낭비하고, 살아 있는 동안 삶을 낭비한다.
서른일곱에 말기 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나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줄리 입 윌리엄스
1976년 1월 베트남 땀끼에서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세 살이 되던 1979년 2월, 베트남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고향을 탈출했고 그해 11월 미국으로 이주했다.
UCLA에서 수술을 받고 부분적으로 시력을 회복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축복 속에 태어나 축복 속에 살아가며 인생을 행복하게 보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줄리를 임신한 엄마는 몸이 견딜 수 없을만치 아파서 초록색 알약을 먹었다는 이유로 줄리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자책한다. 줄리의 언니도 선천성 백내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베트남에서 미국인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아 정상적인 시력을 회복했지만 줄리가 태어났을 때에는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미국인 의사들은 본국으로 귀향을 하여 베트남의 땀끼에서는 미국인 의사가 없었다.
줄리가 태어난지 2주일이 되던 날, 줄리의 할머니가 손녀를 보기 위하여 방으로 들어왔고 손녀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고 초점이 없는 것을 알고는 장님임을 직감한다. 할머니는 다낭에서 용하다는 한약쟁이를 줄리 부모에게 소개하고 줄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줄리 부모가 찾아간 다낭의 한의사는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할 수 없다" 며 그들을 돌려보내고 줄리는 세상에서 1차 구원을 얻었다고 스스로 말한다.
1979년 베트남 내전이 한창일 때 난파선에 겨우 올라타서 베트남을 탈출하고 미국에 도착을 한다.
UCLA에서 백내장 제거 수술을 했지만 때를 놓치는 바람에 온전한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평생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약한 시력을 찾게되는 2번째의 구원을 얻었다고 줄리는 말한다.
"앞을 못 보고 사는 것이 어떤 건지 알기나 해? 말도 못하게 비참하고 끔찍한 인생을 사는 거야. 나 같으면 눈 먼 것보다 차라리 귀 먹은 쪽을 택하겠다. 혼자서 길도 못 걸어. 집 안을 돌아다닐 때도 여기저기 부딪치겠지. 생리를 시작하면 그땐 어쩔 거냐? 온 사방에 들개 암컷처럼 피를 흘리고 다닐 텐데. 그리고 누가 눈 먼 년이랑 결혼을 할까? 누가 눈 먼 년을 사랑해? 누가 나서서 그런 년을 돌봐? 그런 남자는 없다. 네가 죽고 나면 그 애는 팔 다리 없는 장애인처럼 길에서 구걸을 하며 연명할거야. 네 딸이 그렇게 살길 바라니? 그래?"(P.76)
줄리를 죽이라는 할머니의 악다구니이다.
줄리는 보란듯이 홀로서기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윌리엄스대학에 들어가 1등으로 졸업을 하고 하버드대학원에 들어가 법학을 전공하여 훌륭한 변호사가 되었고 세계적인 로펌인 클리어리 가틀립 스틴 앤 헤밀턴에 입사하여 승승장구하며 남편 조시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이쁜 두 딸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다.
결혼 전, 불편한 시력으로 세계를 혼자서 여행하며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고 어떠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었다.
그런 줄리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친다.
2013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결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이 책은 결장암을 진단받은 후 줄리가 자신의 상태와 지나온 과거를 진솔하게 정리하며 쓴 글이다.
결장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줄리는 최선을 다하여 치료 받으려고 노력하였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어린 두 딸에게 보여줌으로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기억하게 하고 두 딸이 자라서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길 원하며 쓴 글이다.
치료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 앞에서 애써 미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함으로 헛된 소망과 기대를 가지게 하지 않으려는 솔직함도 내포하였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도 기록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완치를 꿈꾸던 줄리는 몸 안에서 전이되는 암덩어리와 아무리 애를 써도 내려가지 않는 수치를 보며 죽음을 예감한다.
죽음을 앞에 둔 줄리 역시 때로 미친듯이 분노하며 억울해하기도 한다. 광기어린 분노와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은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줄리는 자신의 죽음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신이 죽은 후에 남겨진 가족들이 살아가며 부딪칠 상황을 대처할 글을 남긴다.
남편 조시가 맞이할 슬픔과 새로운 여자를 맞이할 대상에 대해 욕을 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이해를 구하며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을 부탁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두 딸의 앞날을 위하여 가족과 친지들에게 엄마의 빈 자리를 부탁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너무나 슬펐음을...
투병생활 5년인 2018년 3월, 6세 8세인 딸과 남편을 두고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남편과 부모님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 줄리는 독자인 내게도 편지를 남겼다.
'이 책을 읽게 될 분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 삶의 여정을 나눌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일상의 고통에 매몰되지 말고 느긋하게 삶을 즐기세요. 최대한 긍정적으로 살고 확률 따윈 무시하세요.
아들, 딸, 남편,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세요. 살아가세요.
친구들, 그저 살아가세요. 여행을 하세요. 여권에 스탬프를 모으세요" (P.368)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는 많은 환자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망각한 채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으며 살아가는 내게 줄리의 마지막 인사는 삶에 대한 숭고한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줄리 입 윌리엄스..
늦으나마 그녀의 명복을 빌며 남아 있는 가족들이 그녀를 잊지 않고 영원한 마음으로 사랑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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