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그냥 앉아서 흘러가는 구름이 뭉개구름이니 새털구름이니 솜털구름이니 노래만 불러선 안된다는 생각보다 먼저
의자에 붙박이한 엉덩이가 들썩이기도 전에, 정말 여름이 그렇게 더울줄 생각지도 못했던 날,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송이송이 익어가던 날에 10월의 마지막 날을 제주도에 저당잡히고 말았다.
더운 여름은 물러갈 것 같지도 않고, 10월의 마지막 날은 너무나 아득하여 차량도 숙소도 정하지 않고 여름을 보내고 추석을 보낸 후에야 10월이 말갛게 나를 내려다보고 가을이 서리처럼 희끗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 순간 박영기씨에게 전화를 하고 도두동에 있는 유니온훼밀리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어느새 나이가 들었던가,
여행에 대한 설렘도 기대도 그저 시큰둥한 이유는, 떠나기 하루 전에 박권사가 취소를 하기 위한 전조가 아니었을까.
마침 남양주미금지역 부흥회가 우리교회에서 열리고 1일 여전도회 기도회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는, 여전도회 회장인 나도 막지 못하는데 싶어서 내심 서운하고 짜증도 뭉개구름처럼 피어나더라는 말씀이다.
이른새벽 김포로 가는 공항버스에 앉으니 그제서야 제주도를 향하여 날아가는 실감이 난다.
비행기가 정확한 시간에 출발을 하여 약속된 시간에 제주공항에 우리를 내려준다.
영기씨가 노을언덕무인카페로 오라는 전갈에 공항에서 택시를 타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어 현실의 대한민국 경제를 들여다보게 하고 어쩐지 마음이 서늘하여지는 것을 추위처럼 느낀다.
이른 점심은 장가네 일품순두부집에서 해물순두부와 일품순두부로 해결하는데 순두부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순두부는 얼큰하면서도 해산물의 맛이 강하여 제주도의 참 맛을 느끼게 한다.
지난 봄에 서방이랑 이승이길(한라산둘레길 중 수악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비가 내려서 입구에서 돌아선 기억이 아슴하여 목적지를 이승이오름으로 정했다.
한라산 둘레길을 걷고 싶은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영기씨가 이승이길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천아숲길을 걷는것이 좋다며 한라산둘레길 중의 하나인 천아숲길로 인도한다.
곱게 물든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열광하듯이 감탄사도 내뱉으며 조릿대가 무성한 천아숲길을 걷는 걸음은 가볍다 못해 춤을 추게한다. 청정한 공기속의 나무들은 고운 잎으로 물이 들었고 색색의 단풍들은 내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천아숲길의 끝까지 걸으려면 하루는 걸릴 듯하다.
적당한 길에서 돌아서는 마음은 또 지키지 못할 다음을 약속하고야 만다.
천아숲길을 나온 우리에게 영기씨가 억새가 한창인 새별오름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무성한 억새와 비끼는 노을이 썩 잘 어울릴 새별오름을 향하는 세 여인은 어느새 처녀로 돌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