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편지
김 숨 / 현대문학
김 숨 작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자료를 찾아가며 쓴 책이 2년 전에 출간된 <한명>이라는 소설이다.
<한명>이라는 소설에는 '흐르는 편지'처럼 이토록 고통스러운 내용까지는 담기지 않았던 것 같다.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고 아팠다.
독자들을 위한 재미를 충족하기 위한 글이 아니며, 실화를 이야기 한 것이기에 몸과 마음이 함께 아팠고 울분이 짐승처럼 내 속에서 커져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흐르는 편지'는 열세살의 소녀 '금자'가 비단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이장의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팔려간 이야기이다.
자기 이름만 쓸 줄 알고 한글도 모르고 주소도 모르는 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하여 끌려간 곳이 만주의 위안소이다.
'세계위안소'에서 '낙원위안소'로 옮긴 금자의 이름은 후유코, 도시코, 모모코, 후미코, 야에, 미쓰코, 요시코 등등일본 군인들이 갖다붙힌 수많은 이름중의 하나이다.
조선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금자라는 이름조차 잊어가며 날마다 수십명의 일본군인을 몸으로 받아내는 소녀들,
은실과 금실자매, 악순언니와 에이코, 요시코 등 조선의 여자들이 낙원위안소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버티어가는 일상들이다.
열세살에 팔려간 금자는 열다섯살이 되고, 어느 날 자신이 임신을 했음을 알게 된다.
'삿쿠'(콘돔)을 사용하지만 몇번씩이나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아침이면 소녀들은 강물로 가서 빵처럼 생긴 삿쿠를 빨래를 하듯이 세탁을 한다.
강물에서 삿쿠를 씻으며 금자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다.
글자를 몰라서 연필로도 쓰지 못하고, 주소를 몰라서 부칠 수도 없는 편지를 흐르는 강물 위에다 손가락으로 조곤조곤히 써내려간다.
강물에 쓴 편지가 고향으로 흘러가 어느 날 빨래를 하러 나오신 엄마가, 머리를 감던 엄마가 딸의 편지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변소에 가려고 마당에 나왔다가요..
초승달에 낀 흰 달무리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순두부 같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벙긋 벌렸어요. 그것을 먹으려고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금자는 아기의 심장이 생기기 전에,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아기가 죽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에게 눈동자가 생기고, 심장이 생기고, 손가락이 생긴 것 같아서 죽기를 바라면서도 한편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뿐만 아니라 아가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섯개씩 붙어 있지 않을까봐 만지지도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내가 죽으면 아기도 죽을까, 내 심장이 멈추었음에도 아가의 심장이 뛰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명의 존귀함을, 존엄함을 스스로 인정하며 감싸는 자신의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다.
날마다 강물에 편지를 쓰는 금자의 마음이 너무나 절실하고 섬세하다.
아기를 낳아서 중국여자에게 넘긴 악순언니가 미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8개월된 죽은 아기를 해산하는 친구를 보면서 두려움 보다는 아기로 인해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두렵고 불안하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는 날, 조선의 여자들을 총으로 쏴 죽인다는 협박이 무서워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고향으로 향한 애달픈 마음일 뿐이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음식으로 보이고 , 가시철조망에 걸린 옷들이 여자아이로 보이는 위안소의 삶은 어쩌면 죽을 수 없기에 감당하는 일들이 아니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조선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몸으로 고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소녀들,
죽기 전에 엄마를 한번이라도 보고싶어하는 여린 소녀들의 간절한 소원앞에서 마음이 무너진다.
'어머니, 오늘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어머니, 그런데 나는 무슨 죄를 지은 걸까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먼 데까지 끌려와 조센삐가 되었을까요'.
임신에서 해산까지의 기간동안 흐르는 강물에다 쓸 줄 모르는 글씨 대신 손가락을 물에 휘저으며 마음을 담은 편지가 고향에 계신 엄마에게 당도했을까?
어쩐지 나는 그 편지가 머리를 감으러 나오신 엄마에게 당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잔인하고도 잔인한 일본군인들, 그 세월을 견뎌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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