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이 기 주 / 말글터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서문에서 작가는 내게 묻는다.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순간 나는 당황한다.
지금까지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 쯤이나 될까?
말의 속도나 높낮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이 상대의 귀에 들리는 빛깔이나 많고 적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소리로 전해지는 나의 언어를 듣고 기함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녹음기를 틀고 목소리를 녹음한 뒤, 다시 들어본 내 목소리는 정말 아니었다.
딱딱하고 강하여, 부드러움이나 노래하듯이 하는 말은 아니었다.
고향에서의 생활보다 수도권에서의 생활이 배가 되는 지금도 여전히 억양이나 사투리는 경상도 특유의 억세고 뻣뻣함을 고집스레 지양하고 있음에 놀랐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소리의 모양보다는 質的인 온도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기주,
말의 품격에 이어 언어의 온도를 읽는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고 자상한 설명을 할 수가 있으며 적재적소에 맞춤한 예를 가져다 둘 수 있을지..
그의 삶이 한 눈에 보여지는 듯 하다.
작가의 삶은 지나치게 피곤하여 스스로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염려까지 해본다.
길가에 자라는 풀 한포기도, 나뭇가지에 걸린 꽃 한송이도, 수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세계 각국의 영화 한편이나 시 한편도, 한권의 책이나 작가까지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건 그의 관심일게다.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공경이다.
어머니가 평생 잊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친구를 찾아드리기 위하여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는 것도, 철 따라 어머니의 화장대 위에 꽃다발을 놓아 드리는 것도, 수분크림이나 양산을 은밀하게 놓아 드리는 모습이 정말이지 감동이다.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효를 바라보며 그는 분명 언어의 온도가 높을 것이며 선한 일에 앞장설 것이며,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나를 든든하게 한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인향만리(人香萬里)
꽃은 향기로 말한다. 봄꽃은 진한 향기를 폴폴 내뿜으며 벌과 나비와 상춘객을 유혹한다.
향기의 매력은 퍼짐에 있다. 향기로운 꽃 내음은 바람에 실려 백 리까지 퍼져 나간다.
그래서 花香百里라 한다.
다만 향기가 아무리 진하다고 한들 그윽한 사람 향기에 비할 수 없다.
깊이 있는 사람은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모른다.
향기의 주인이 곁을 떠날 즈음 그 사람만의 향기, 人香이 밀려온다.
사람 향기는 그리움과 같아서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人香萬里라 한다. (p.293-294)
말(言) - 마음에 새기는 것
글(文) - 지지 않는 꽃
행(行) - 살아 있다는 증거
3단락으로 나누어진 에세이들이 모두 기억이란 저장고에 간직하고 싶다.
누군가의 차가운 말의 온도로 인하여 아직도 아파하는 내 심장을 바라보며
내 언어의 온도를 높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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