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스크랩] 父와 富

여디디아 2017. 12. 5. 16:15

父와 富

         이현숙


종이를 만들던 아버지는

닥나무를 지고 골목 어귀에서

깊은숨을 고르셨다

목을 길게 빼고 지팡이를 짚으며

부(富)를 더듬거리는 길이었다


밤새도록 어머니와 아버지는

닳은 관절 위에서 뭉툭한 칼로

닥나무 껍질을 벗기셨다

껍질이 벗겨 나가고 속살이 훤히 드러난 만큼

어머니 무릎에선 뼈가 빠져나가고

아버지 몸에선 쇳소리가 났다


부(富)를 향한 걸음은 늘 숨이 가빴다

지게 높이 하얀 종이를 쌓아 올리시던 아버지는

무서리 내리던 어느 밤 닥나무 숲으로 떠나셨다

닥나무 숲에선 자주 쇳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쇳소리는 생전에 아버지께서 가업으로 종이를 만드셨는데

천식을 앓고 있으셨음에도 계속되는 작업 중에 들려오는 기침 소리를 비유함.

출처 : 제비꽃
글쓴이 : 제비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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