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잃다

여디디아 2016. 12. 28. 09:51

 

 

 

 

 

 

잃  다

 

                                                              이  현  숙 

 

 

 

삭풍은 불고 날은 저문다

밤새 허물어진 공장 터엔 길 잃은 비둘기 서성거리고

양동이 가득 노란 머리 터번 속에 숨기듯 검은 천으로 싸맨 채

트럭 뒤 칸에서 팔려가던 콩나물,

중년의 남자가 가졌던 새벽이 사라졌다

치매 노모와 나이 차 많은 젊은 아내와 늦둥이 아들은 이제야 중학생이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산다고 했다

 

건물주는 기한에 맞춰 건물과 땅을 팔았다

포르셰를 타고 온 새 주인은 수년간의 생계 터가 하룻밤 새 무너진 곳에 차를 세웠다     

재고가 쉼 없이 풀숲에 부어지던 지난 날, 때맞추어 달려왔던 비둘기의 불어 난 몸집도

무너진 공장처럼 차차 허물어질 게다

언제나 차고 넘치던 그들의 식량창고 위엔 굴착기 지나간 자리가 매끈하다  

비둘기는 길을 잃고 그들의 화수분은 굳게 닫혔다

 

개가 짖는다

비둘기가 제 밥그릇 앞에 앉았다

눈이 내린다

콩나물이 자라던 공장 터에 하나둘 내려앉는다

비둘기가 공터에 앉았다

서운함을 표출하는 시위인가 공사장을 노려보며 눈을 부라린다

 

공장터와 풀숲은 굴착기 서너 번에 노른자가 되고 시멘트가 부어졌다

둘러쳐진 휘장이 비둘기의 접근을 막으려 버젓하다

 

콩나물 공장 사장은 어디에서새벽을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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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기웃하다.

많은 것을 얻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은 날숨과 들숨처럼 흔하디 흔한 것이라지만

생계를 잃어버린 상실감과 生에의 배반감은 늘 우리의 뒷통수를 후려친다.

 

詩가 전쟁을 멈추게 하고 

칼자루와 총자루를 내려놓게도 하지만

스치듯이 지나가는 우리 삶의 아픔을 환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돈,

그 놈의 돈이 세상을 뒤엎어 혼돈속에 우리를 가두는 날들,

중년남자의 잃어버린 새벽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노란콩나물을 풀숲에 버리는 중년의 남자의 아픔을 배반한채

배를 불리는 비둘기는 이제 개 집앞의 개 밥 그릇에 눈독을 들이며

빈 뱃속을 채울 궁리를 하지만

 

한해가 기우는 것으로도 서러운 

중년남자의 헛헛한 뱃속은 무엇으로 채워질 것이며

치매 노인의 끝 없는 허기짐은 누가 채워줄 수 있을까.   

 

새해가 오기 전에

중년남자의 서러운 새벽이

희망의 새벽이 되기를 소망하며...

 

2016. 12. 28

 

진옥이의 한마디!!

            

 

 

**동생 제비꽃의 불로그에서 담았습니다. 

어쩐지 마음을 울리는 詩라서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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