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여디디아 2015. 12. 3. 13:37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

 

허  연  

 

 

때늦게 내리는

물기 많은 눈을 바라보면서

눈송이들의 거사를 바라보면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언젠가는

눈 쌓인 겨울나무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그렇게

아주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형식으로 영혼이 되는 것이라는

괜한 생각을 했다

 

당신이

북회귀선 아래 어디쯤

열대의 나라에서

오래전에 보냈을 소포가

이제야 도착을 했고

 

모든 걸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눈물이라고

난 소포를 뜯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소포엔 재난처럼 가버린 추억이

적혀 있었다

 

하얀 망각이 당신을 덮칠 때도 난 시퍼런 독약이 담긴 작은 병을 들고 기다리고 서 있을거야.

날 잊지 못하도록, 내가 잊지 못햇던 것처럼

 

떨리며 떨리며

하얀 눈송이들이

추억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1966년 서울 출생

1991년 <현대시세계>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시작작품상] [한국출판학술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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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을 바라보며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눈'이란 것을 알아차린 인아는 

유리창 밖에서 내리는 첫 눈을 바라보며 하얀 눈처럼 펄펄 뛰며 좋아라 하더니

 오늘 아침 쏟아져 내리는 두번째 눈을 바라보며 우산을 꺼내들고

창 밖에서 내리는 눈을 방 안에서 피하고 있다.

 

비, 눈은 우산을 받고 맞아야 한다는 것을 어린 것이 어찌 알았을까.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면서 피해야 할것은 지혜롭게 피하고

이롭지 않은 것은 우산을 펼쳐 막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아이가  피해야 할 비, 눈이라면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전에 이미 통증이 느껴지는 욱씬거리는 몸의 소리를 들으며,

 하루쯤 전에 들리는 기상캐스터의 예고를 들으며

미리 우산이 되어 어린 것이 젖지 않게 팔을 뻗을 수 있으면 좋겠다.  

 

때로 수직으로

때로 둥글게

또 때론 굽이치며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며

 

옛사랑도 잊혀지고

저몄던 아픔조차 망각하고

아슴한 그리움조차 마음 한가닥에 남아있지 않음이

 

하얀 눈이 머물 텅 빈,

이미 차디찬 겨울녘의 들판이 되어버린 내 마음 밭을 만난다.

그런 마음이 눈의 온도처럼 차디차다.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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