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시간이 지나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눈이 닿는 곳마다 화려한 꽃들의 색상처럼 우리가 입은 옷의 색깔이 달라지니 내 속에서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댄다.
4월의 제주도가 가장 아름답다는 소식은 기어히 엉덩이를 들쑤시고 손가락을 들먹거려 항공사를 들락거리게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한번 제대로 못하는 서방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1년에 몇번씩 혼자서 날아오른 사실이 미안하기도 해서 오랫만에 함께 남벽분기점을 오르기로 했다.
사무실에 놀러온 경자집사에게 말을 했더니 23일이 생일인데 함께가자고 하는 바람에 비싼 주말보다 가격이 저렴한 목요일에 먼저 가서 구경하라고 하고 토요일 새벽 4시에 출발했다.
부부가 여행을 하면 대체로 싸우고 돌아오는 확률이 많다는데 우리는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김포공항을 향하여 달리는데 갑자기 서방이 외곽순환도로 대신 네비가 가리키는 엉뚱한 곳으로 차를 달리는데,
새벽이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길을 1시간 20분만에 도착을 하는 갖가지의 일들이 나를 화나게 하고, 다시는 함께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다닌다는 타당한 이유를 들이대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부부의 여행은 싸움이구나를 실감케 하고, 비행기를 탑승하고 하늘을 날아오르면서도 마음은 먹빛이 되어 다시 땅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는 기막힌 사실이 돌아보는 지금도 성질을 돋구게 한다.
미리 예약한 렌트카의 시간을 맞추었는데 40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셔틀 탓으로 혹시 힐 렌트카가 망하고 나는 사기를 당했는건가? 하는 몹쓸 마음까지 들어 더욱 나를 화나게 했다.
결국 박영기씨한테 전화를 걸고 셔틀운행시간이 8시부터라는 사실을 알고 버스기사와 안내 아가씨에게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었음을... 문자에 8시부터 운행이라는 사실을 기입해 달라고..
이틀전에 도착한 경자집사는 전날 올레 7코스를 걷고 중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내에서 매일 만날 때보다 제주도에서 만나는 마음은 왜 더 큰 것인지, 타향이기 때문일까?
여전히 운전하는 서방은 영실을 지나쳐 가라앉던 화를 돋구었고 후회를 부추겼다.
백록담 코스보다 더욱 멋지다는 남벽분기점,
한번 다녀간 길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지난번 비가 내릴때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먼 경치까지 보여줌으로 너덜거리는 내 속을
정리해주는데는 단번이다.
진달래가 환하게 피었을거란 기대와는 달리 멀리 보이는 백록담을 향하여 올라갈수록 아직은 겨울산을 볼 수 밖에 없다.
5월말이면 철쭉제가 열린다고 하니 그때는 정말 천국처럼 아름답고 이쁜 한라산이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달력을 흘낏거리고 항공사를 들락거리는건 또뭔가.
윗세오름에서 먹는 컵라면은 역시 최고이다. 지난번 윗세오름에서 먹은 컵라면이 맛이 있어서 집에서 먹어봤더니 한 젓가락을 겨우 삼키고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컵라면이 먹고싶어서 윗세오름까지 오른다고 하질 않았던가!!
역시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만치 유별나다. 아저씨의 무뚝뚝함과 투박함과 펄펄 끓는 물 한 국자를 딱 한번에 부어주시는 레시피의 맛인가!!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까지의 길은 역시 천국을 걷는 기분이다.
지난번보다 더욱 환한 속살을 내보이는 백록담의 파인 가슴이 어쩐지 서늘하다.
내년부터는 영실에서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다고하니 그때 한번 더 백록담엘 가봐야겠다.
남벽분기점에서 돈내코로 내려오고 싶은 마음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하고, 내려오는 길에 윗세오름에서 어리목으로의 길은 나만 제외하고 여유만만한 일행들의 모습을 보니 굳이 왜 거길가느냐는 무언의 표현이라 간단히 접고 말았다.
윗세오름이 넓은 광장,
이번 남벽분기점에서 내 마음을 콱 사로잡고 말았다.
따사로운 햇빛과 알맞은 바람과 커다란 까마귀들의 노님과 여기저기 무리지어 눕고, 기대고, 체조를 하고, 핸드폰으로 이미 찍은 사진을 확인하고 간식을 꺼내고 헐렁한 모습으로 사방을 돌아보는 여유가 좋아서 굳이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이 어느 나라 어느 광장에서 둘러본 모습을 표현한 듯이, 윗세오름의 이 광장이 내게 큰 세상을 느끼게 하고 커다란 포용력을 안겨주는 것 같아서 정말 좋기만 하다.
영실로 내려오니 아직도 시간은 넉넉하다.
숙소로 돌아와 해수탕에 들어가 짠물에 몸을 담그어 하룻동안의 피로를 풀어보는데 몸이 해산한 여인의 몸처럼 그렇게 풀어진다. 아니 허물어지는게 더 정확할 것이다.
양집사님께서 회만 보면 내 생각이 나신다고 한다.
지난번 황금산에 갔을 때 회를 먹는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이셨다고..
제주도에서 내게 회를 사 주시겠다니 감격과 감동이 제주 앞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온다.
덕분에 싱싱하고 맛있는 회를 실컷 먹어보는 호사도 누린다.
유니온훼밀리의 밤은 신령스러운 영실의 묵직함과 싱싱한 회의 쫄깃거림과 달달한 제주도의 봄바람과 함께
죽음같은 깊은 잠으로 나를 이끈다.
이 보다 더 좋을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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