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 훈 / 해냄
왜 그랬을까, 내가..
교보문고에 들어가니 '공터에서'라는 책이 첫 화면에 떴다.
그런데 나는 김진명과 헷갈려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예약판매도 미루고 넘기고 지나치고 스치고...
어느순간, 김진명이 아닌 '칼의 노래'와 '화장'을 쓴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김 훈 님이 떠올랐다.
송구한 마음에 얼른 찜했더니 마음을 받아주기라도 하듯이 금새 책이 내 앞에 배달되었다.
공터에서..
글의 중간중간에 공터에서라는 단어가 몇 번 나왔다.
혼자 식사 후 공터에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아버지의 죽음이나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고 난 후에도,
아내와 함께 오붓한 신혼살이를 하면서도, 갓 태어난 딸의 얼굴을 생각하면서도 공터는 나를 '나'인채로 들여다보게 하고 보듬게 하고 또한 다듬게도 하는 장소이다.
아무런 생각없는 빈 공간, 공터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오롯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의 참의미를 책의 제목으로 삼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짧은 소견이다.
소설은 전쟁의 피난민속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피난길에 남편과 어린 딸과 아들을 잃은 어머니 이도순여사와, 만주와 상해를 거쳐 피난길에서 빨래를 하고 댓가로 삶을 연명하던 아버지 마동수가 한 가정을 그리게 된 사연과,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까지,
그리고 맏아들 마장세의 조국에서의 도피는 외국에서의 삶 가운데서 떼어버리고 싶은 가족의 緣을 끊지 못하면서도 의무를 다하지 않는, 애증의 관계를 나타내주고 있다.
차남인 마차세는 상병휴가를 나와 여자친구를 만나는 시간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어머니와 아들들은 자유를 느끼기까지 하게 된다.
글의 중심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차남 마차세가 전체적인 것을 이끌어간다.
너무 가난해서 고통받으면 어쩌나 하는 오지랖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지만 다행히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지 않고 그렇다고 부요함으로 시건방지지 않아서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부정이나 부패에 휩싸여 썩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세상은 늘 양면이기 때문에 결국 형 마장세의 옥살이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상적인 삶의 이야기를 소설로 펼쳐 놓았지만 작가 특유의 표현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참 좋았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이 들어있는 표현이 얼마나 구미를 잡아당기는지.
"천정에 붙은 도마뱀이 바늘 끝 같은 눈으로 마장세를 바라보았다.(p.152)"
"몸 속에서 먼 몸이 자라고 있었다"(p.278) -박상희의 임신을 표현함
가끔 이 책이 조정래님의 글인가 싶어서 놀라기를 몇번씩이나 했었다.
그렇게 많이 닮아 있었고 덕분에 나는 책을 읽는내내 행복했다.
김진명이라 오해하고 뒤로 미루었던 것을 용서바라며 다시 김 훈의 책을 찾아 읽어야겠다.
환한 벚꽃이 지난 자리에 초록의 이파리들이 봄바람을 타고 유영한다.
그 봄바람 처럼 나도 봄바람이나 나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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