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아주 긴 변명

여디디아 2017. 3. 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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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 김난주 옮김 / 무고의뿔

 

 

기누가사 사치오라는 일본에서 유명한 야구선수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신의  이름에 대해 회의적인 사치오는 대학에서 고토에가 키우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지만 고토에는 대학 생활중 미용기술을 익히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찾아 미용사로 일을 한다.

사치오는 대학을 졸업한 후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잠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채 나쓰코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10년동안 나쓰코 덕분에 살아온 사치오는 마침내 작가로서의 명성을 드러내고, 드러난 명성만큼 유명해진다.

유명해진 만큼 사치오의 삶 역시 달라진다.

10년동안 뒷바라지한 나쓰코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은 어느새 잊혀지고, TV에 나와 퀴즈를 풀기도 하고 강의도 하고, 이쁜 여자들과 섹스를 하기도 하며 쾌락에 빠진채 살아간다.

 

나쓰코와 친구 유키는 겨울이 되어 가족들을 남겨둔채 스키장으로 향한다.

스키장으로 달리던 버스가 얼음길에 추락을 하게되고 승객 10명이 숨을 거두게 되는데 나쓰코와 유키가 숨을 거두게 된다.

뉴스에서는 속보로 사고를 보도하지만 아내가 떠난 집에서 사치오는 다른 여자와 섹스를 벌이고 뉴스 또한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경찰서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서야 아내의 여행을 떠올리고 아내가 스키를 타러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키는 남편과 아카이 신케이라는 어린 남매를 둔 채 나쓰코와 함께 여행길에 나섰다가 죽게된다. 

 

아내의 죽음앞에서도 사치오는 슬퍼하거나 울지 않는다.  유명한 소설가인만치 표정연기로 사람들에게 슬픔을 가장한다.

나쓰코와의 삶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거운 책무였던지를 느끼며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책감은 유키네로 향한다. 

화물차 운전으로 지방으로 떠나는 아버지와 초등학생 신케이는 어린 아카이를 보살피며 아내, 엄마가 없는 자리를 메우지 못한채 허덕인다.

10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기도 갖지 않은 사치오는 유키의 가족을 돌보기 시작하며 가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하나씩 배워가고 아내에 대한 빚을 조금씩 갚아가기 시작한다.

 

유키의 남편은 일에서 돌아오면서 드링크를 가져와 아내의 영정앞에 두며 아내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아내의 친구 사쓰코에 대한 기억까지 하고 있다,

또한 아내로부터 온 문자메세지를 읽으며 지우지 않고 있는 것을 본 사치오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아내의 휴대폰을 찾아내고 지워지기 전의 문자메세지를 확인한다.

 

'이제 사랑하지 않아. 털끝만큼도'

라는 메세지를 확인한 사치오는 절망한다.

그 메세지가 자신이 보낸 메세지가 아니더라도 나쓰코가 느끼는 남편에 대한 감정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은채

나쓰코의 고백이라고 믿어버리고 만다.

나쓰코의 1주기 행사에서 그는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속내를 뱉어냄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오해하게도 한다.

또한 이카이와 신케이가 성장하는 모습과 가족애를 보며 외톨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며 쓸쓸해한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술집으로 달려가 값비싼 술과 예쁜 여자를 안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그는 집으로 달려가 아내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아내를 위하여 우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한다.

 

남자의 자존심은 때로 모른척 덮어둠으로 유지되는 것일까?

10년동안 아내 덕분으로 살았던 남자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커녕 아내에 대한 사랑마져도 잊어버린다.

아내의 취미, 아내의 옷, 아내의 가방조차 찾지 못하는 남자.

이런 무심한 생활이 나의 생활이 아닐까 싶어져서 화들짝 놀란다.

습관처럼, 아침이 되고 점심이 되면 배가 고프고 다시 저녁이 되면 피곤해진 몸의 생체리듬처럼,

가족 또한 그런 일상의 부스러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사치오의 마음을 읽으며 때론 코 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질금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나는 소중한 것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아주 긴 변명을 하고 난 후에야 울 수 있는 그런 오래된 낡아빠진 그림같은 날들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를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때론 죽음을 생각하게도 하는 이들이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며 내 삶의 존재의 이유인 가족이다.

가족이 건강하기를, 가족이 안전하기를, 가족의 일원들이 모두 억울하지 않기를 바래보며

고요한 감사가 화사한  봄볕과 닮아 있음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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