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나
정용준 / 문학과지성사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정용준 작가의 글을 읽고 싶었다.
'선릉산책'과 '안부'를 읽은 후 그의 작품세계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며칠 간 병원에 앉아서 읽고 싶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었고 모처럼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은 분초가 지나는 것 조차 아까웠다.
정용준의 '가나'를 읽으니 어쩐지 김광석이 자꾸 떠오른다.
그의 작품세계가 왜 이렇게 습기가 가득한지.
아무리 웃는 얼굴을 해도 슬퍼보이던 김광석,
아무리 즐거운 노래를 불러도 어딘가 스민 울음의 조각들처럼 정용준의 글에는 아득한 아픔이 슬픔으로 배어 있다.
떠떠떠, 떠
가나
벽
굿나잇 오블로
구름동 수족관
먹이
여기 아닌 어딘가로
어느날 갑자기 K에게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단편들이 소복하게 실린 책이다.
누구나 인간은 태어났음으로 인해 언제인가는 죽게될 것이지만 정용준은 이 책에서 죽음을 많이 드러낸다.
죽음조차 스스로의 운명의 끝에서가 아니라 타인에 의한, 타살 아닌 타살로 이어지는 것을 본다.
자신의 몫을 다하고 난 사람의 죽음과 아직도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람의 죽음은 다르다.
죽음이란 것 또한 주어진 환경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날을 저당잡히며 죽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가난해서, 병으로 인해, 먹고 살기 위해서 등 떠밀리듯 한 환경과 조건에서 죽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책 속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용준 스스로 어릴적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죽음과 함께 말(言語)에 대한 집착까지도 강한 것 같다.
떠떠떠, 벽, 굿나잇오블로.. 등 많은 작품이 말을 하지 못하거나 말을 더듬으며 살아가는 애환을 그려낸다.
말을 하지 못함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까지.
아무튼 정용준의 작품을 통해서 습기가 가득하고 슬픔이 아련하여 주제넘게 작가가 염려되기도 한다.
물론 글은 글일 뿐이지만 그의 정신건강이 소설의 내용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면 좋겠다.
허구가 아닌 사실을 토대로 한 작품(물론 작가가 사실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어서인지 더욱 마음이 무겁다.
찬란한 봄볕이 온 누리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습기 머금은 마음들이 바짝바짝 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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