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정 용 준 / 문학동네
정용준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첫번째 소설집 '가나'와 비슷하다.
어쩐지 어둡고 음습하고.. 물기가 가득하여 혹시 내게로 전염이 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까지 가지게 만든다.
워낙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인 나 스스로를 알고 있는지라 때로는 혹시라도 감정이입이 될까봐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474번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미드윈터-오늘 죽은 사람처럼
개들
이국의 소년
안부
내려
새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네
중단편이 나란하게 실려 있는데 여전히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심정을 그려냈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나'는 병원 투석실에서 신장이 좋지 않은 환자들, 피를 교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간호사이다.
20년이 넘도록 이모와 이모부를 부모님처럼 생각하며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독립하여 살고 있다.
그런 어느날 나를 찾는 전화가 오고 상대방이 자신의 친아버지란 사실을 알린다.
24년전 아이가 어린아이였던 어느 날,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남편이 칼로 아내를 죽이는 장면을 아이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고 뇌리에 박혔다.
이튿날 신문에서 부부싸움으로 인하여 남편이 아내를 죽였고 잠이 든 어린아이가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잠들지 않았고
엄마를 죽인 아버지가 '나'를 침대에 눕혔고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이모네로 들어가 이모와 이모부에게 엄마 아빠라며 부르며 자랐다.
특별히 살갑지는 않았지만 이모내외는 좋은 분들이었고 '나'는 불평없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라왔으며 부모란 존재자체를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아버지란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종신형을 받은 아버지는 신장병을 앓고 투석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며, 그동안 감옥생활에서 모범적으로 수감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석방이 되어 병든 몸으로 자유를 찾는다.
혈육이라는 이유는, 아버지란 이유는 자신의 자식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며 그곳이 감옥이라고 할지라도 자식의 안부를 알아내며 궁금해하며 또한 못견디게 보고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투석을 하는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의 난감한 감정이 잘 드러난다.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라 부르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죽일 생각을 품는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혈육의 당김 또한 부정할 수가 없어하는 아들이다.
'기습적으로 찾아온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편두통이 생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둡고 위험한 충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얼굴을 대하면 대할수록 점점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했고 마음이 상했으며 이상하게 억울했으며
기이한 수치심을 느꼈다' (p.55)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인 아버지,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고 보고싶지 않고 수치심을 안기는 아버지,
하지만 병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는 '나'에게 불쌍한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식탐이 가득하여 계란과 치즈를 움켜쥐는 아버지를 보며 경멸을 느끼기도 하지만 병원냉장고를 뒤져 치즈를 훔치는 아버지에게 '나' 는 치즈와 계란을 한아름 안긴다.
혈육이라는 이유로 자식을 찾아 의지하는 아버지,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인 아버지를 용서하기 싫으면서도 어느 순간 측은해지는 마음을 인정하기 싫은 '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나'를 어지럽게 하고 정체성을 혼란하게 한다.
글을 읽으며 도대체 혈육이라는 당당한 이유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고 갉아 먹고 있는가를 생각해봤다.
비록 살인이 아니더라도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유로 피해만 끼치며 수치를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데 있는 것이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자리에 어느새 '내'가 들어가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이 꽃샘추위처럼 추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