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한 스푼의 시간

여디디아 2017. 1. 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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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푼의 시간

 

구 병 모 / 예 담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쓸쓸해지고 외로워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나 자신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놀랍게 변화하는 산업사회의 모습들을 보며 순간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고

어느순간 둔한 나는 이 지구상에서 설 자리마져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도 느끼게 된다.

날마다 실업자들은 늘어가고 곳곳에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컴퓨터가  사람보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며 장차 우리는 어떤 모습을 살아가게 될지 문득 초조해진다.

 

한 스푼의 시간,

세탁기 뚜껑을 열어젖히고 세제 한 스푼을 빨래감 위에 풀어 넣고 녹아지는 시간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세제 한 스푼이 녹아내려 찌든 때 위의 빨랫감으로 스미는 시간은 몇 분쯤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들이 그렇게 하릴없이 짧은 시간들은 아닐까.

한평생을 지나고 난 후, 돌아보면 우리네 생은 한 스푼의 시간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자리에서 돌아보는 과거의 내 시간들 역시 알집으로 압축된 듯이 한 스푼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소설의 무대는 세탁소이다.

명정(처음엔 여자의 이름인 줄 알았다)은 외아들을 외국으로 보내어 공부를 시킨다.

국내에서 공부를 하고 취업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끝까지 거역한채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를 한 아들은 외국회사에 취업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출장길에서 하늘 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아들의 시신도 확인하지 못한채, 어쩌면 어디쯤에선가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대속에서 살아가는 명정의 아내 역시 어느 날 재봉틀 위에서 바닥에 진통제를 남긴채 죽어있음을 발견한다.

 

후미진 골목길에 드러난 세상은 언제나처럼 고달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부비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이웃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고 이웃들이 병으로 세상을 뜨며, 이사를 하고,

아가들이 자라서 학생이 되고 그 학생들이 청년이 되어 사랑을 하고 다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명정에게

어느 날 집채만큼 커다란 택배가 도착을 한다.

어이없게도 몇 년전에 죽은 아들이 보내온 택배는 아들이 다니던 회사제품인 로봇이다.

이미 회사는 폐업을 하고 로봇 역시 단종이 되어 생산조차 끊어졌으므로 서비스도 받을 수 없는 제품이지만 명정은 아들인 듯이 로봇을 받아들이고 은결이란 이름을 지어주며 로봇과 함께 살아간다.

 

은결(로봇)은 기계가 아닌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마음까지도 가진, 말까지 또박또박 할 줄 아는 인간지능형의 로봇이다.

명정을 대신해서 세탁을 하기도 하고 배달도 하며 네비게이션 장착으로 혼자서 마트를 다녀오기까지 한다.

준교와 시호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명정의 세탁소에 들어온 은결은 그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다시  

대학생이 되어 아파하는 청춘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세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세주가 키우는 아이의 성장과정까지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며 지켜보기도 한다.

 

로봇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품은 은결이 바라보는 사람사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가난한 이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의 편린들,

청춘들이 힘들게 살아내어야 하는 전쟁같은 오늘들,

이미 세상에 온 사람들이 살아내어야 하는 온갖 삶의 모습들을 무덤덤하게 지켜보며, 때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 참아야 할 줄도 아는, 어느 순간 사람들이 놀랄만한 말을 함으로 오히려 사람을 위로하는 로봇 은결의 이야기이다.

 

한줌의 시간들이 흐른 뒤, 정말 은결같은 로봇들이 우리 삶에 나타난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대신해서 청소도 하며 밥도 하고 설겆이도 함으로 훨씬 편안해질 내 육체이지만

어쩐지 주춤거리게 된다.

 

로봇의 입장에서 헤아리게 되고 가늠하는 모든 계산들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어쩐지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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