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 서방과 7살 차이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와 막내아들로 많이 다투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할머니는 막내아들을...
주일오전예배후 속초로 달려가 물치항에서 회를 잔뜩~~
화진포.. 이승만대통령 별장에서.
1983년 정월 설을 지나고 대보름을 지나 작은언니의 생일과 내 생일이 이틀 간격으로 이어질 때,
시골에서 엄마가 오셨다.
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결혼할 남자도 없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큰집아재가 사주를 보니 네가 올해 시집간다카더라"고 하는 말씀에 얼마나 펄쩍 뛰었던지, 방구들이 내려앉을 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안가면 안가는거지 뭘 그렇게까지 놀랐는지 이해가 가지 않건만 기가 막히게 놀랐던 것은 잊히질 않는다.
신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돋보기를 낀채 책만 보시던 큰집아재(아버지의 사촌형님)는 사주 풀이를 하셔서 정초에 청안이씨들에게 물조심과 불조심과 사람조심과 차조심을 강조하시고 결혼적령기에 들어선 청년들에게는 특별히 올해는 결혼을 한다던가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또 결혼을 하여 새가정을 꾸민 신혼의 부부들에게는 올해는 새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이 있을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등, 정초가 되면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다둑이곤 하셨다.
큰집아재의 사주풀이는 정확해서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는 주일오후에 동생의 소개로 서방을 만나고 그 해를 넘기지 않고 12월에 결혼을 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교회 못간다"던 시어머니는 결혼사진에 서울제일교회 주일학교 호산나성가대의 '사랑'이라는 찬양이 축가로 퍼질 때 고개를 외로 꼬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심통가득하게 돌아 앉아계시고, 그중에 새댁인 듯한 작은어머님은 환한 얼굴로 아이들이 부르는 찬양에 기쁨으로 동참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서울시내에 한동네에도 십자가와 종탑이 저녁만 되면 불빛들이 휘황찬란하여 도대체 서울시내에 교회가 몇개인가 싶어 시골촌닭인 나를 놀래키더니, 그 많은 교회에 그 많은 세월동안 단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서방과 시누이들이 더욱 나를 놀래키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세현이를 낳은 후, 작은어머님이 추어탕을 하나가득 끓여서 석관동엘 오셨다.
다섯살인 주현이에게 공문수학(지금의 눈높이수학)을 시키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공문수학을 시작하기도 했었다.
작은댁 두 시동생은 내가 결혼했을 때 6살, 8살의 어린아이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작은 도련님은 개구쟁이티가 얼굴에 도배가 되다시피했었기도 하고, 주일학교에서 남학생들만 대하던 나는 특별히 꼬마도련님에게 마음이 갔었다.
명절이면 초코파이를 감추어 두었다가 도련님이 오면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볼을 꼬집기도 하고 엉덩이를 두둘기기도 했었다.
큰 도련님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 연합고사에서 다섯개를 틀렸다고 했던 기억과 강북에서 Top인 학생이 다섯개가 틀렸다는 소식에 강남의 교육열이왜 소란한지를 어렴풋이 알게되기도 했었다.
중학생이 된 도련님과 초등학생인 도련님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신 작은어머님이 몇년전에 잠시 다녀가신 후, 이번에 2주간의 휴가로 우리집으로 오셨다. 마침 세현이도 떠난 후라 집안이 널널하기도 하고 빈 방도 있기 때문에 지내시기에는 부담이 없으시다.
내 성격상 무리하게 대접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식탁이 신경에 쓰인다. 물론 신경만 쓰일 뿐이지 늘 외로운 식탁이어서 민망하기 그지없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지난주 목요일에 서방이 광고협회에서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제 오전에 돌아왔다.
혼자서 살림하랴 사무실 지키면서 일을하랴...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금요일 저녁엔 동생이 준경이와 함께 와서 일을 거들고 토요일엔 제부까지 와서 일을 거들었다.
나를 이 가정으로 보내시기 위하여 미리 작은어머님을 보내셔서 기도로 돕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내 말에
이 가문을 사랑하셔서 작은어머니에게 든든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시는 작은어머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 기도하고 이해하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금요일이면 다시 캐나다로 떠나실테고, 빠른 시일내에 캐나다로 놀러오라며 티켓을 보내시겠다는 작은어머님,
눈으로 보니 내 생활이 너무나 분주하여 어느 한순간 쉴 여유가 없어서 안타까우며, 홀시아버지로 인한 짐은 감당할 수 있는 큰그릇이기에 맡겨진 사명인 것 같다며 가만가만 등을 두드리시고 기도로 힘을 보태주시니 위로가 된다.
이제 언제 다시오실지 모르는데 섬김이 늘 소홀하다.
이 소홀함마져 이해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편안함을 위한 욕심일 뿐일테지만
이것이 나의 한계임을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짧은 기간이지만 2주간의 생활이 서로에게 기쁨이었으면 좋겠고, 주님앞에 서는 그날까지 함께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잔잔한 미소로, 잔잔한 음성으로, 세미한 보살핌과 내밀한 신앙으로 지켜봐 주시는 작은어머님을 통하여 많은 위로를 받으며
또한 누군가 나를 철저하게 이해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