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점심 하루 일식
저녁 금남리 논두렁
여지없이 일년에 단 하루이다.
음력 1월 18일,
시간 또한 여느 날과 다름없이 빛의 속도로 지나는 날,
마치 10분이 지난것 같은데 하루가 지나고 어느새 다음날이고 점심시간이 지났다.
생일이 주중이라 내일모레 언니 회갑에 같이 떼울까 생각 중인데 주말에 시간이 괜찮으시냐고 성희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주현이와 세현이와 성희와 선이가 함께 날짜를 맞추고 시간을 정한 것 같으니, 마흔을 훌쩍 넘긴 나는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말이 바쁜 것도 아니고, 널널하게 남아 돌아가는 것이 시간인지라,
말로만 자식들 걱정을 하는지, 성희의 질문에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없이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좋아라고 대답을 보냈다.
토요일 오후 4시반에 마석 꽃마름을 예약해 놓은 아이들이 오후가 되어서 속속히 모인다.
가장 반가운 인아와 함께 꽃마름에 도착을 하니 분위기 좋은 방으로 우리를 들인다.
월남쌈과 해물과 소고기 국물이 화려하게 등장을 하지만 내 등에서, 손에서, 곁에서 한줌도 떠나질 않는 인아를 붙드느라 음식에는 별 관심을 가질 수 조차 없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걸 인아를 통해서 알고 있으니,
무릎에 붙은 인아와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월남쌈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미 행복하다.
선이가 사 온 케잌에 수십개의 촛불을 켜고 축하송을 부르고 인아와 함께 촛불을 끄고 났는데 인아가 다시 성냥을 찾더니
앙증맞은 손으로 성냥을 긋는 시늉을 한다.
인아생일에 초를 세개 켠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할머니 생일에 인아의 생일 인증샷을 다시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결국 초가 다 타고 까만 재가 남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다시 불을 켜고 다시 부르고 끄고를 무한반복했다는...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을 먹지 않으면 내가 서운한 것 보다 엄마가 서운하실 것 같아서, 지난 설날 사돈댁에서 보낸 한우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어릴적 생일날이면 찰밥을 해주시던 엄마 생각이 나고, 서울에서의 생활이 이어지던 날,
찰밥에 들어간 것이 찹쌀보다는 차좁쌀이 더 많이 들어간 찰밥,
그 노란찰밥이 혹시라도 상할까봐 노란콩고물에 묻혀 보자기에 담아 첩첩산중에서 서울까지 가져오시던 아버지가 생각이 눈물로 이어진다.
어린시절의 가난과 엄마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을 생각하며 찰밥을 해서 뱃속 가득하게 채워넣었더니 오전내내 배가 백봉산의 해거름처럼 가득하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으려다 '생일날까지 도시락을 먹고 설겆이를 한다'는 생각이 어쩐지 불공평한 것 같아 서방이랑 하루 일식에 가서 폼나게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이다.
언니생일이란 이유로 서방 몰래 꿍쳐둔 비상금으로 이미 지난달에 아이더에서 등산화와 형부과 함께 입으라며 커플 티셔츠까지 선물한 동생이 제부와 함께 식사를 하잔다.
금남리에서 대나무통밥과 고등어구이를 먹고 다시 마석으로 가서 고구마라떼까지 마무리하고나니 하루가 저문다.
설을 지나고부터 부어 오르듯이 불어나는 몸은 아무리 집어넣어도 거부할 줄 모르고, 먹고난 후의 후회는 땅을 치게 만들지만
이성은 단 한순간도 감정을 이기지 못하니, 분명 절제 부족이다.
생일이란 이유로 섬리안 아이크림을 선물해준 명옥언니와 윤조에센스를 선물해준 언니,
등산화와 티셔츠로 휘청거리는데도 저녁에다 디저트까지 기쁨으로 대접해준 동생,
시어머니 생신이란 이유로 설을 지낸지 보름만에 다시 봉투를 준비하고 카드를 확 내리그은 가엾은 우리성희,
치매시부모님을 모신다는 이유로 늘 안타깝게 생각하여 좋은 화장품으로 위로하는 언니의 마음과 같은 직장에서 16년을 함께한 이유로 아직도 좋은 것으로 내 생일을 기억하며 챙겨주는 명옥언니,
모두가 감사할 뿐이다.
꿈인듯이 지나간 생일이지만 활짝 웃으며 할머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인아의 녹음된 소리를 들으며
피곤한 중에서도 봄꽃처럼 웃을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구순을 바라보시며 다른 세계를 잠결에 옮겨앉고 싶은 친정엄마,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염려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가물거리는 정신속에서도 오늘이 셋째딸 생일임을 기억하고
언니의 생일에 저녁으로 섬기는 막내딸을 착하다며 칭찬하시는 엄마,
빈 마음으로, 울음가득한 사랑으로 대신합니다.
*어설픈 솜씨로 언니 생일이라고 감주까지 만들어온 이현숙씨,
과분한 선물과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사랑의 빚을 한보따리 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