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한 명

여디디아 2016. 10. 22. 11:23

 

한  명

 

김  숨 / 현대문학

 

 

세월이 흘러,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분 뿐인 그 어느 날을 시점으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작가 김 숨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시간이, 위안부로서 마지막 한 분이 살아계시는 그날을 기억하며 읽으라고 당부한다.

 

태어나서 열세살의 어느 좋은 날,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군인들에게 납치를 당하던 그날까지 풍길이란 이름으로 살던 분,

그때가 되도록 한글을 몰라서 집으로 찾아올 줄도 모르고 편지 한 장, 전보 한장 보낼 수도 없었던 아득하고도 아득하던 시절의 그 분,

군인들을 데리고 자야한다는 말에 총을 든 군인을 왜 데리고 자야하느냐며 말갛게 쳐다보던 그녀가 미치코로 불려지던 날들,

한 몸뚱이에 자신도 모르는 몇개의 이름을 달고살며, 차라리 몸뚱이 마져 이름처럼 여러개였으면 고통이라도 나눌 수 있었음을 부러워 하던 분들..  

 

차마,

읽는 것 조차 죄스럽고,  눈물조차 사치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어찌하랴.

사람이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사람새끼들이 약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동물보다 못하게 짓밟고 헤집고 난도질하는 모습을,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을 파리를 잡듯이 쉽게 여기며, 모기 한마리를 후려침보다 더욱 가볍게 내리치며 죽이면서도 

유쾌하고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인간들의 잔혹함..

 

가끔 표현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누군가가 맞춤하게 표현해 놓은 것을 볼 때는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표현이란 것이 얼마나 허전한 것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속이 비어 있는 것인지를 깨닫는다.

 

거리낌없이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도록 잔혹한 일본놈들에게 분노가 치밀고,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동네에서 어린 소녀들을 잡아다 바치는 같은 민족은 ,내가 그들을 짓밟아 으깨고 싶어지는  잔인하고 무참한 충동을 일으킨다. 

 

'그녀'는 친정조카가 재개발을 위하여 준비한 양옥집에서 혼자 늙어간다.

댓돌위에 나비(고양이)가 물어다 숨겨놓은 신발을 보면서도 위안부로서 고통받던 끔찍한 기억들속에서 몸부림치고

나비가 물어다 놓은 죽은 까치들을 보며 함께 고생하다 외롭게 죽어간 많은 친구들과 언니를 기억하며 아픈 가슴을 싸안으며 행여 누군가 자신의 과거를 알아챌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텔레비젼을 보던 그녀에게 김학순이란 여자가 '나도 피해자요'라며 위안부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을 고백하는 것을 보며, 20만명이 끌려갔다가 2만명이 돌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기다리던 고구에, 고향집에 돌아와도 그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야 했고 병든 몸은 다시 외롭게 죽어간다.

김학순이란 분 역시 먹고 살 길이 막막하여 위안부였다는 고백을 하게되고 정부의 지원금을 받게 되지만,

'나도 피해자요'라고 고백을 한 후 많은 분들이 이웃의 냉대속에 고백을 후회하게 되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간다.

 

재개발을 위하여 마련한 집이지만 정부방침에 따라 재개발이 무산되어지자 평택의 조카는 이모를 양로원으로 보낼 계획을 하지만 그녀는 양옥집에서 죽기를 소망한다.

조카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날, 그녀는 김학순여사를 만나러 가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동안 위안부에 대해서 책도 읽었고 영화도 보았지만 맛보기에 불과한 것임을 알았다.

그분들이 당한 고통은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다.

위안부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한 소설이기 때문에 작가가 살을 보탤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 김 숨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고통을 걸러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글을 쓴 후 작가 역시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어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잔혹하게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는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당하지 않은 일이라 어쩌면 호기심이나 약간의 분노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난 후, 나는 한없이 억울하고 한없이 분노한다.

 

열세살 딸,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다가 손에 쥔 다슬기 여섯마리를 만주위안소까지 꼭 쥐고 갔던 두려움과

어린 딸의 행방에 창자가 끊어지고 썩어 문드러졌을 어머니의 마음이란...

 

죄송한 마음이다.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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