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여디디아 2016. 10. 1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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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  /  난><다

 

세상의 모든 흰 것들..

나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들이다.

한 강이 '모든 흰' 것들을 기억하며 써내려간 연작시 같기도 하고, 수필같기도 하고, 연재소설 같기도 한 글이다.

 

스물셋의 엄마가 첫 딸아이를  7개월만에 조산한 날,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병원은 아득한 먼 거리에 있었고, 처음으로 해산하는 두려움속에서 스스로 물을 데워 아기를  씻기고

가위를 소독해 탯줄을 끊었던 엄마는 빈 젖을 아이에게 물린다.

본능으로 빈 젖을 빨던 아기가 두어시간이 지난 후, 그제서야 돌기 시작한 엄마 젖을 빨더니 어느 순간 숨을 거둔다.

"죽지마, 죽지 마라, 제발."  

엄마의 간절한 기도에도 아기는 삶이 경계를 지나서 죽음으로 스민다.

이듬해 다시 낳은 아들도 태어나자 마자 죽고나서 화자인 "나"가 첫 아이로 태어난다.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첫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과 안타까움으로 한숨을 지으시던 엄마를 기억하며, 

베냇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어버린, 언니와 부모님을 기억하며 쓸쓸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간간히 읽어간 책을 마무리할 때쯤, 지금의 내 마음을 대신해 주는 글이 있어 독후감을 대신한다.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회복될 때마다 그녀는 삶에 대해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되곤 했다.

원한이라고 부르기엔 연약하고, 원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얼마간 독한 마음이었다.

밤마다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이마에 입 맞춰 주던 이가 다시 한번 그녀를 얼어붙은 집 밖으로 내쫓은 것 같은,

그 냉정한 속내를 한 번 더 뼈저리게 깨달은 것 같은 마음.

 

 그럴 때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녀 자신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서먹서먹했다.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 그 얼굴 뒤에 끈질기게 어른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젠가 반드시 나를 버릴 테니까.

내가 가장 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돌이킬 수 없이 서늘하게 등을 돌릴 테니까.

그걸 나는 투명하게 알고 있으니까.

그걸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까. 

(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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