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붉은비단보
권지예 / 자음과모음
지난해인가,
여자, 사임당 (신영란)에 관한 소설을 읽었는데 다시 권지예의 붉은비단보로 사임당을 만났다.
여자 사임당은 사임당의 일생을 표현한 글이었다면, 권지예는 순수한 여자의 삶을 자세히 파헤쳤다.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이전에 한 가정의 딸로서의 사임당, 인선을 자세히 그렸다.
물론 7남매를 둔 어머니로, 이원수라는 남자의 아내로서도 잘 표현했지만
신인선이란 이름으로, 외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이름을 항아(恒我)라고 개명해 달라고 떼를 쓸 줄 아는
똑똑하고 고집이 있어 천부적인 재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여자의 이야기라 더욱 공감이 간다.
딸만 있는 가정에 둘째딸로서 아들같은 역할을 감당하지만, 외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는 인선의 총기와 지혜와 재능을
인정하며 조선의 여자로서 기량을 펼칠 수 없음을 한없이 안타까워 했다.
훗날 세월이 바뀌어 사임당의 글과 그림이 시대를 앞장서며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음을 기대하며
사임당의 재능을 여자라는 이유로 꺾지 않고 오롯이 키워주었다.
여자 사임당에서는 옆집 남자(준서)와의 사랑이야기가 여기와는 달리 표현되었다.
오다가다 눈이 마주치고 얼굴을 붉히고 마음에 그 사람을 담아두고 그리워했다면
붉은비단보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절절하고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그려진다.
첩실의 자식으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지만 뛰어난 학식과 좋은 머리, 그리고 시와 글에 뛰어난 준서와의 애틋한 사랑이 사임당을 더욱 깊은 통찰력을 키우게 하고 문장마다 무르익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설령 그것이 소설이라는 이유로 과장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사임당의 그 사랑이 정말이었으면 싶어진다.
무능하고 게으르고 색을 좋아하는 서방과의 삶은 늘 사임당을 외롭게 하고 쓸쓸하게 했지만
마음에 품은 정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삶에의 기쁨과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면 나쁜 여자라고 몰아세울 수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죽을 듯한 사랑으로 더 많은 글과 그림이 그려지고 색이 입혀지고 시가 농밀해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사임당의 삶에 탈출구가 되기도 했고 의미가 되기도 했으며 위로와 이유가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닐까.
붉은비단보의 시작은 세월이 흘러 겨우 관직을 차지한 남편이 큰아들 선과 셋째 아들 珥를 데리고 먼 출장길에 오르게 되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녘에 상서로운 珥의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들중에서도 열세살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아들 이는 사임당의 큰 기쁨이며, 말로 하지 않아도 이해하며 눈짓으로도 깊은 사랑을 나누는 모자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다는 설렘으로 돌아온 이에게 사임당은 싸늘한 시체로 아들과 남편을 맞이한다.
그런 어머니를 앞에두고 珥는 어머니에 대한 의문과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하여 고민한다.
어느날 어머니의 서랍에 들었던 붉은비단보에 남자의 초상화와 목련이 환하게 그려진 어머니의 치마,
밤마다 달을 향해 비는 이 마음(夜夜祈向月)
살아생전 한 번 뵐 수 있기를.(願得見生前)
그리고 애틋한 연서를 발견한 이는 어머니에 대한 혼란과 혼돈에 빠지게 되고,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붉은비단보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누나 매창이 감춘 붉은비단보는 세월이 얼마쯤 흐른 후에 인선이 친구 초롱의 등장으로 알게 되고,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를 이해하기 위하여 금강산으로 떠나는 珥의 모습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언제나 같은 모양, 같은 색깔이란 사실이 참 놀랍다.
고운 단풍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 같듯이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