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8월초부터 시작되는 여름휴가를 기다렸지만 딱히 어디를 가고싶지도 않고, 어디를 가야할 곳도 없다.
인아네도 휴가가 우리와 겹치는데 작년처럼 메이필드호텔에서 1박2일 보내기로 하고 다른 날은 별 일이 없다고 하기에 집으로 놀러오라고 했더니 착한 성희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인아네가 오겠다기에 급히 가까운 양평 설매지자연휴양림에 예약을 하고, 1박 2일 동안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마실까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음식들을 떠올리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 토요일이 되자 현장답사를 떠났다.
양평이라 집에서 1시간만에 달려가서 보니 인터넷에서 보던 그림과는 너무나 달라서 20%의 손해를 감내하면서 취소를 하고 다시 춘천자연숲휴양림으로 달려갔다.
역시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휴양림은 아니어서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저런 구실로 휴가를 포기하고 사무실에서 에어컨이나 켜놓고 책이나 실컷 읽으려던 마음으로 출근을 하니, 기다린 듯이 일감이 많아서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정신없는 시간들이다. 화요일에 인아가 오기로 했는데 마음이 더욱 급해지는건 어쩔 수가 없다. 일이 많아도, 몸이 바빠도, 아무리 많은땀이 흘러도 인아를 기다리는 마음은 모든걸 이기게 하고 견디게 하니...
참 김인아씨는 묘한 능력을 지니셨음에 틀림없다.
오후에 도착한 인아가 사무실 마당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러 마석에 있는 석정으로 갔다.
아기의자에 앉혀놓은 인아가 플라스틱 물컵으로 물을 마시더니 주현이나 성희는 인아앞에서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는데 물을 마신 빈 잔을 머리위에다 붓는 시늉을 하더니 컵을 바닥에 던지는 것이다.
주현이가 "인아 한번만 더 던지면 아빠한테 혼난다"고 주의를 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컵을 던지는게 아닌가.
두번째 컵을 던지자 주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아에게 다가가 엄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라고 하고
인아는 말간 얼굴로 할머니를 향하여 SOS를 청하고 있다.
문득 지난 날의 내 모습이,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며 할머니로서, 시어머니로서의 지혜로운 모습이 필요할 것 같아 적잖게 당황한다.
아주 옛날에... 내가 아주 젊었을 적에, 나도 젊고 구순을 바라보시는 친정엄마도 아직은 젊었을 적에,
그리고 우리집 맏며느리인 큰 히도 아직 젊었을 적에...
친정에 갔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나를 보더니 한마디씩 하신다.
"엄마한테 딸들이 주는 용돈 손주들 한테 다 쓰지말고 아끼라고 해라. 할매가 손주들한테 돈을 다쓰고 해달라는 것 다 해 주니까 애들 교육이 안된다고 올케가 흉보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딸 다섯이 용돈을 보내면 엄마는 세명의 손주들에게 몽땅 쓰는 통에 딸들이 속상해 하는데, 속도 모르고 큰 히가 할매 때문에 아이들 버릇이 나빠진다고 흉을 보고 다닌다고 하니...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누이값으로 큰 히와 맞짱을 떴다.
그리고 몇년이 흘러 나도 아이의 엄마가 되고 그때보다 조금 나이가 들었고, 나의 시어머니 또한 할머니가 되셨다.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와 함께 살다보니 낮 시간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초2, 초5)은 당연히 할머니가 보살피게 되셨다.
그런데 나와 남편이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오늘 세현이가 무슨 잘못을 했고, 주현이가 이런 잘못을 했고,
이렇게 할머니 말씀을 안들었고 저렇게 할아버지 말씀을 안들었고.."
집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아이들의 잘못을 일일이 일러바치는 덕분에 부부싸움이 끊어지지 않았고
덕분에 이혼까지 할 뻔 했었다.
주현이가 인아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자 인아가 "인아 손 없어요"라며 얼른 손을 탁자아래로 감춘다.
그래도 아빠가 손을 내밀라고 하자 팔을 깍지끼며 "인아 손 없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체면이고 자시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만치 웃음이 터져나와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은데...
성희를 바라보니 모른체 식사만 하고 있다.
인내하며 아닌척하며 곁눈으로 부녀를 바라보며, 여자아이라서 그런가, 요즘 세태가 그런가,,,하며 간을 보고 있는데
계속 시침을 떼는 인아에게 결국 아빠가 지고 만다.
주현이 얼굴에 참지 못하는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보고, 인아의 간절하게 할머니를 찾는 눈빛을 그제서야 맞받으며
"인아야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그럴께요 라고 해야지"라고 하니 인아가 따라한다.
부녀가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난 뒤에야 나는 굽어진 허리를 펼치고 마음껏 웃는다.
무조건 감싸는 할머니와 무조건 일러바치는 할머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바뀌고 또 바뀌고나니 무조건 감싸던 할머니곁에는 손주들이 옷자락 끝을 잡으며 매달리고 있는데
일러바치던 할머니곁에는 아이들마저 얼씬거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할머니의 자리에 서게 되고보니
할머니의 자리는 결국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자리란걸 깨닫게 된다.
아~~
김인아씨~
보고싶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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