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스토리

요양원

여디디아 2016. 3. 28. 18:00

 

 

처음 시어머니 치매는 내가 가장 먼저 알아챘다.

아들이어서, 딸이어서, 남편이어서 어지간한 변화는 그냥 그러려니... 나이 탓이려니...하며 넘어가지만

한 발 건너서 바라보는 나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때 부천에 시부모님께 다녀오던 날, 느닷없이 어머님이 자동차에 오르셔서는 안 내리겠다고 떼를 쓰시고 

온갖 말씀을 다하시고는 "절대로 말하지 마라"고, "내가 그런게 아니다"고 어린아이처럼 의자에서 비비고 계셨을 때,

난 정말 어이가 없었고 정상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는데, 서방은 엄마라는 이유로 무심하게 넘겼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아버님의 전화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 집을 구해달라"였고

시누이의 전화는 "엄마가 이상한데 오빠가 모셔라"는 압박으로 마치 태풍이 몰려오듯이, 쓰나미처럼 슬금슬금 나를 향한 압박이시작됐다.

 

그전에도 어머니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벼랑끝에 내몰렸다.

"차라리 이혼하겠다"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말로 서방의 말을 잘랐지만 돌아선 뒷모습에서는 늘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남았었다.

몇개월을 기도하고 결심하고, 다시 부수고 다시 허물고, 다시 다잡고 다시 터트리고를 반복한 끝에 결국은 두손을 들고 말았다.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성령의 강한 역사하심이 내 마음을 녹였고,  나는 순종했다.

 

함께하는 날들은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 치매가 깊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정말 감당하기 힘이 들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멀쩡하다고 말씀하시는 아버님이 단 한번도 시어머니 약을 챙겨 드리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해 초부터 소변을 분간하지 못해 방에서 혹은 밖에서 옷을 입은채로 줄줄 흘리는 어머니에게 단 한번의 기저귀도 채워드리지 않아 내 속을 뒤집고,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 흥건한 방바닥을 청소하는 유세에 온 집안이 벌컥 뒤집어졌다.

방바닥을 제외한 거실이나 현관이나 밖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오줌은 단 한번도 닦지 않으시고 구경만 하시는 분이시다.

 

지난주에 시누이네서 일주일을 지내시고 돌아온 날, 오후에 싼 소변과 밤새 두번이나 싼 소변과 옷가지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마치 세탁 후 탈수하지 않은 옷가지에서 떨어지는 물처럼 온 집안 구석구석이 오줌이다.

바지에 잔뜩 오줌을 싼채로 화장실을 찾는다고 거실에서 부엌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다니시는 바람에 발을 내디딜 곳조차 마땅하지 않다.

 

마침 우리 형편에 맞춤한 요양원이 예비된 듯이 있어서 지난 월요일 오후에 병원에 간다며 어머니를 모셨다.

가룟유다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예수님을 팔아 넘겼겠지만 하필이면 가룟유다의 마음에 사탄이 들어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김으로 세상 끝날까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가룟유다처럼, 왜 이런 악역은 내가 맡아야 하는지.

근래들어 간판이 몇군데 들어와 작업이 꽤나 바쁘다.

아침 이른시간부터 늦은 밤까지 서방이 일을 해야하고, 잠시라도 틈을 낼 수 있는 내가 요양원으로 모시고 가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꼭 가룟유다 같은 심정이라고할까?

 

아버님께는 병원에 가셨다고 둘러댔는데 아침이면 아버님이 "자고 일어났는데 네 엄마가 없다. 어디갔냐"는 전화를 하신다.

어제서야 정신이 드시는 듯 어머님께 데려다 달라고 조르기 시작이다.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중에도, 집으로 가는 중에도 빨리오라고 성화를 지으시더니 집에 가니 아예 밖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요양원에 갔더니 두 분이 서로 눈물바람이시다. 하긴 평소에도 특별한 금슬이시니...

그러더니 아버님이 벽력같은 소리로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든다.

"여기는 돈만 받아 먹고 사람 죽이는 곳이니 빨리 집으로 가자"라고.

하루 세끼 따뜻한 식사에, 간식에, 목욕에, 틈틈이 넘어질까봐 눈도 떼지 않은채 돌보는 도우미들이 계시는데 사람을 죽이는 곳이란다.

평소에 10시가 넘어야 일어나시는 분이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데리러가자고 난리시다.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는 당장 어머님 데리러 가자고 전화통을 괴롭히고 나와 서방을 향해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잠잠히 나를 돌아보고 내가 잘못한 것인가.. 생각해봤다.

집에서 계셔도 되는데 요양원으로 모신건가?

뜬금없이 죄의식도 느껴보고 냉정하게 입장도 바꾸어 살펴보았다.

5년이 되도록 약 한번을 챙기지 않으시고 밤마다 기저귀 한번을 챙기지 않으시고, 목욕하기 싫다는 이유로 한번 재촉하지도 않으시던 아버님이 지금에와서야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당신이 잘해왔노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노라고..

"그렇게 걱정스러우면 같이가서 계시라"는 말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펄쩍 뛰신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될까?

아버님 또한 정상이 아님은 분명하건만, 병원에 가자고 하면 "네가 나를 미친놈 취급한다"며 때릴듯이 다가오신다.

무섭다.

정말이지 무섭고 끔찍하다.

 

이 사막같은 날들이 어서 지나가기를,

여리고성처럼 견고한 이 힘겨운 성벽이 하루빨리 허물어져 동서독이 화해를 한 것처럼 내 마음도 진정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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