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신
박범신 / 문학동네
당신.... 꽃잎보다 붉던
박범신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희미한걸 보니 족히 십년은 넘은 것 같다.
책 소개란에서 읽던 중 치매에 걸린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내의 회상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구미가 당겨진 것은 치매라는 말 때문이다.
치매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날마다 깊어가는 시어머니의 치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엇이며 결혼은 또한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결혼이라고 하잖은가.
주인공 윤희옥과 주호백, 그리고 김가인
지독하고도 질긴 사랑이다.
어쩌면 너무나 끔찍해서 사랑이라고 하기에도 두려울만치 지독하다.
개개인의 사랑이 소중하고 그 사랑 하나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이건 좀 지나친거 아닌가 싶어진다.
'나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윤희옥,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서 갖은 모욕과 멸시와 굴욕을 견뎌내는 주호백,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
정말이지 비참할만치 헌신적인 남편과 당연한 듯이 여기며, 그런 남편을 두고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어린아이마져 팽개치며 사랑을 찾아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마져 불편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남편이 늙으막에 치매에 걸린다.
치매에 걸린 남편은 이전에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을 아내를 향해 퍼붓는다.
젊은 시절, 어린것과 자신을 버리고 첫사랑을 찾아 나섰던 아내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머리채를 휘어잡고 욕설을 퍼붓는 모습을 보며 일흔이 넘은 아내 윤희옥은 바야흐로 자신이 남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치매에 걸린 남편의 행동과 고통을 보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극진히 남편을 보살피며,
남편이 특별히 사랑하던 청매화이자 청매화에 대한 알레르기로 실신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청매화 상자를 가득하게 담은 방에서 남편을 떠나보낸다.
후회만 남은 사랑을 위해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남편을 마당에 묻고 그 위에 매화나무를 심고 매화나무를 바라보며 남편이 죽지 않고 자신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며 아내 또한 치매와 함께 노년의 남은 날을 향해 서서히 빠져든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란 윤희옥이 김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끊긴 연줄을 잡으려 뛰어가던 주호백은 마상위의 윤희옥에게 마음이 송두리째 빼앗기고
평생을 그녀를 위해서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젊고 건강할 때 단 한번도 받지 못한 사랑을 치매에 걸린 후에야 아내로부터 사랑을 받는 주호백의 인생이 어쩌면 어리석은 사랑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후회하며 남편을 향해 사랑의 고백을 하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사랑의 빚을 갚아가는 모습을 보며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는 것도 같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도 생긴다.
글을 읽으며 박범신을 재발견한 듯하다.
표현들이 어쩌면 그렇게 생생한지,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이나 자신을 만나는 마음의 표현을 참으로 잘 나타낸다.
남자가 느끼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감정들과 살아온 날이 가져다주는 삶에의 회한과 기쁨들이 얼마나 맞춤하게 잘 나타내어졌는지.
때로는 글의 내용보다 단어의 생경함과 익숙함과 적재적소에 아귀처럼 맞추어진 문장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란 것을 느낀다.
한지붕아래에서 살면서 우리는 정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상대방의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노력이나 했을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에도 분주하고,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허둥대느라 배우자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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