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천양희 산문집 / 문예중앙
아무리 아픈 눈물이라도 끝은 있다.
눈물의 끝에는 늘 웃는 울음이 생겨난다.
천양희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등이 있고
산문집 '직소포에 들다', '시의 숲을 거닐다' 등을 펴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공초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육사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얼마전 교보문고를 뒤적이다 무심코 눈에 띈 책이다.
천양희라 하여 천경자를 떠올렸고, 책이 내 손에 들려진 순간까지 화가 천경자를 생각했다는 무지하기 이를데 없는,
극치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나를 보고 웃을 힘조차 없어지는 어이없음을 어이할꼬.
천양희 시인,
책을 읽으니 그분의 시를 알게 모르게 많이 접했지만 기억은 바람처럼 흩어지는지라 시인의 이름은 까마득히 처음 듣는 듯하다.
'시의 본질은 생명' 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에 크게 긍정한다.
생명이 없는 시는 결코 시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다.
시나 수필이나 소설이나 글씨로 씌어지는 모든 것들은 생명에 본질을 두어야 참된 의미의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보면 글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위력을 실감할 수 있고, 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읽을 때도 공감을 느끼며
진정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릴 것이라 확신한다.
생명이 없는 글은 거짓이며 위선이며 자기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건방진 생각은 책 한권이 나를 이렇게 무례하고 교만하게 만든 것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으며 잔잔한 슬픔과 아픔과 벅찬 눈물의 의미를 깨달으며, 눈물 끝에 웃는 울음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인은 행복한 가정에서 평생을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훌륭하게 양육을 받고 자랐음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선생님이 한마디 "너는 시인이 되어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명문대학에 입학을 하고 걸맞게 졸업을 하고, 시인이란 이름까지 얻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혼의 아픔은 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내침만으로도 충분히 큰 아픔일진대 자식들마저 떠나보내야 했다고하니 그 아픔은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차마 이해하지 못하는 모질고도 질긴, 목숨하나를 잃은듯한 아픔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기분, 그래서 삶이 시시해지고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을 담담히 적어나가는 글에서 진정 슬픔의 나락을 보았으며 미치고 싶도록 잔인한 날들을 견뎌내었을 시인의 인고의 시간들이 절박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끝난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기 위한 마음에도 詩는 시인이 숨 줄을 놓지 않게하는 동앗줄이었으며
구원자였음을 알 수 있다.
허난설헌의 세가지 한을 읽으며 처절한 고독과 뼈아픈 한이 화살처럼 가슴에 박혔다는 말,
아마 같은 아픔이며 한이기에 더욱 고통스러웠으리라.
허난설헌의 혼이 시가 되어 시인에게로 온 것만 같다는 詩다.
허난설헌을 읽는 밤
"나에게는 세 사지 한이 있으니
여자로 태어난 것과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이면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니....."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세상이 오그라드는 한이라 하심에
여자로 태어난 나도 오그라들고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회의라 하심에
조선의 후예로 태어난 나도 어찌할 수 없고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
심장을 토해내는 일이라 하심에
누구의 아내가 되었던
내 심장도 함께 토해낼 듯하여
하룻밤 사이에도 겨울이 오고
소낙비 같은 슬픔이 쳐들어와선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누구의 아내로 사는 누구라도
허난설헌을 읽는 밤
너무 늦게 마르는 눈물 자국이여
이 詩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시리다.
특히 누구의 아내가 되었던 내 심장도 함께 토해낼 것 같다는 한 음절이 시인의 모든 한을 대신하는 것 같아서 마음아프다.
낱말 하나하나가 어찌나 주옥같은 표현이며 새로운 말인지.
글에서 보석같은 빛이 반짝거리고 시인의 마음에 우물같은 깊은 슬픔이 반짝이는 시로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시의 본질인 생명을 느끼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부디 영육이 강건하셔서 좋은 시로 우리를 위로해 주시길 빌며..
12월 첫날이다.
마음이 먼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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