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

여디디아 2015. 10. 23. 17:54

 

 

 

 

 

 

 

 

 

 

 

 

 

 

가을이다.

어쩐지 시간이 지나는 것도, 계절이 바뀌는 것도, 세월이 흐르는 것도 못마땅하고 아쉬운 것은, 살아가는 날들에 대한 애착인가, 집착인가.

더 오래 살고픈 욕심 탓일까?  아니면 날이 바뀔수록 많아지는 주름이 싫은 것일까?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더디 흘렀으면 좋겠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고, 사람은 책을 읽기에 딱 좋은 가을에 오랫만에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에는 평일에 하더니 올해는 어쩌자고 토요일에 한다고 하니 오랫만에 참석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근래들어 시를 쓰는 실력이 부쩍 늘어서, "저 애의 어디에 저런 재능이 숨어 있었을까?" 싶었던 마음에 동생을 꼬득였다.

자신없다는 동생에게 우리는 상을 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참석하여 분위기에 젖어보고 하향평준화에 길들여진 자신을 하루라도 좀 더 고급진 인생으로 느껴보자는 설득에 동생이 기꺼이 따라나섰다.

날짜를 정해놓고 하루전날 된봉을 30미터 앞두고 허리가 삐끗하는 대형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꼬부랑할머니가 되어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서방의 손에 이끌려 평내마디재활의원에 가서 신경치료를 받고 조심스럽게 마로니에 백일장에 참가했다.

 

예전보다 달라진 마로니에 공원, 처음으로 주현이와 어린 세현이를 데리고 와서 백일장에 참가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올해로 33회를 맞이한다고 하니 25,6년전쯤이었던 것 같다. 가을이면 두 아들을 데리고 드문드문 참석해서 오로지 나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느끼고 상과는 상관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에 몇차례 참석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장려상을 두번이나(?) 받아서 20만원, 30만원의 상금을 받아 서방의 양복을 해주었던, 지금 생각하니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시절도 들어 있다. ( 어디 나가려고 하면 변변한 옷 한벌 없었던 꼴에,내 옷이나 사 입을 일이지, 지금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ㅋㅋ)

예전에는 순수하게 글을 좋아하고 끄적이기를 좋아하던 여성들이 참석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등단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참석한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룹으로 참석하고, 가르치는 선생님까지 참석하여 글을 쓴 다음에 그룹에서 1차 심사를 하고 다시 제출하여 상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내 한계를 알았고, 그동안 두 번의 상을 가문의 영광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도 참석할 수 있는 것은  등단을 할 능력도 없고 재능도 없고, 자신도 없는 나를 다그치기 보다는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많은 여성들을 보며 스스로의 존재가 좀 더 가치있게 여겨지고 오롯한 나를 찾을 수 있는 그 날이 참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돗자리를 준비하고 야외용 테이블을 챙겼는데, 동생이 커피와 삶은 고구마를 챙겨왔다.

동생은 시를 쓰고 나는 수필을 써서 남들보다 일찍 제출을 하고는 둘이서 커피를 마시고 마로니에 공원을 꼼꼼히 둘러 보았다.

동생이 쏘겠다며 맛있는 것을 찾느라 공원을 두어바퀴 돈 후에  쌀국수를 먹었다.  

매콤하고 시원하고 따뜻한 쌀 국수를 먹고나니 나른해진다.

 

2시부터 문정희 시인의 문학강의를 듣기 위해 소극장 아트윈으로 향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이미 가득하게 자리를 하고 문정희 시인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문학에 대해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신다.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진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수준 또한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것들이라 많이 놀랐다.

한시간의 세미나는 금방 끝이나고 동생과 둘이서 마로니에 백일장을 축하하며 진행하는 공연을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드러누워서 보았다.

 

5시가 되자 시상식을 위해 여기저기 숨었던 사람들이 쏙쏙 나타난다.

이상한 것은 수상자로 호명이 되었는데도 기뻐하는 사람이 없고 너무나 당연한 듯이 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수상자들에게는 이미 문자로 연락이 되었다는 맥빠지는 소식이다.

그 자리에서 직접 수상자를 호명하는 것이 아니어서 설렘도 없고 당연하지만 이미 물 건너간 상을 기다릴 이유도 없으니 시상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미리 알이서 기다리기보다는 시상식장에서 바로 수상자를 호명하던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면 내년부터는 수상자가 아니면 아무도 자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건 나만일까?

"상은 못탔어"라는 카톡에 "참가상이 장원이야"라는 서방의 답이 어쩐지 위안이 된다.

 

비록 작은 눈일지라도 읽을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쓸 수 있는 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모처럼 나로서의 나를 만나니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가을날이다.

 

시, 아동문학, 산문으로 나뉘어지는 마로니에 전국여성백일장은  남자들은 참가할 수가 없으며 대학생들 역시 참가할 수가 없다.

동아제약에서 협찬을 하며 참석하는 이들에게 동아제약에서 나오는 비타민C와 무릎담요, 박카스와 음료, 그리고 샴푸와 린스 등 여러가지 선물을 한아름 받았다.

참, 장려상은 그새 상금이 많이 인상되어 150만원이 되었다.

 

각 부분별로 입상 5명은 상금 20만원, 장려 3명은 150만원, 우수상 2명은 200만원, 대상은 300만원이며 바로 등단이다.

대상을 탄 분들께 늦었지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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