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동전찾기

여디디아 2015. 7. 14. 09:36

 

 

 

 

 

요란하던 메르스도 지나가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자랑이랍시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어 축제를 한다고 난리를 피우던 동성애 축제니 뭐니 참으로 입에 담기도 해괴한 축제도 끝났지만, 여전히 깨끗하게 마무리되어진 것은 없다.

메르스 소멸이라는 선포를 하기에는 아직 3주간이라는 기간을 지켜봐야 하고, 동성애를 합법화함으로 인권을 보장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일을 국회에서 발의하기를 기다리고 통과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람들의 가당찮은 의견도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새롭게 임명된 법무부장관이 동성애는 '절대 반대'라고 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교회가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으니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는'자유'와 '인권'이란 이름하에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려울 것 같으면 뭉쳐서 촛불을 켜고 데모를 하면 '통과'되는 일이 부지기수이니...

정말 인권이 무엇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임을 깨닫고 신중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며칠전 뉴스에서 500원짜리 동전이 135만원에 거래된다는 희한한 뉴스를 접했다.

1989년에는 동전을 거의 만들지 않음으로 500원 동전이 희소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뉴스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 있는 저금통(저금통이래야 동전 몇개가 달랑이어서 확인하는데 5분이 걸리지 않았다)을 꺼내서 잘 보이지 않는 숫자를 확인했지만 1989년은 눈을 씻어도 없다.

1989년이면 세현이의 첫돌이기도 했고, 석관동에서 전세를 살다가 아들 둘이라는 이유로 전세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살고 있는 집 아저씨가 폐암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산굿을 했더니 셋방(우리집)에 사는 사람이 예수를 믿어서 병이 들었다고해서 계약기간이 아직도 남았지만 아저씨의 병으로 쫓겨나다시피해서 나는 친정인 영천으로, 직장생활하는 신랑은 친가(정릉)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아들 둘이 전셋집을 구하는데 그렇게 큰 걸림돌인줄 알았다면 아들 둘을 낳지 않았을까? 물론 아니다.

길거리에 나앉는다고 해도 사랑하는 두 아들(물론 지금은 하나는 남이고 하나는 반이 남인 아들이지만)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날 신문에서 남양주 평내동에 삼창아파트 분양광고를 보았고 16평의 집을 사기 위하여 가지고  있던 아이들의 돌반지를 팔았고 내 결혼반지를 팔아서 삼창아파트를 계약하고 입주할 때를 기다리던 때였다.

 

1989년 5월,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16평의 삼창아파트에 입주를 했던가!

퇴근을 한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를 돌면서 행복해 하던 날들,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놓고 놀던 주현이와 첫돌을 지난 세현이의 자유로운 웃음소리들로 인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때가 아니었나 싶어진다.

16평의 삼창아파트를 떠나 27평의 신한아파트를 새로 구입했을 때도, 10년후 지금 살고 있는 39평의 이안아파트를 새로 구입했을 때도 우린 그날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제오후, 한가해도 잔인하게 한가한 날이 이어지는 날, 오랫만에 반가운 비가 내리는 오후에 신랑은 의암댐으로 낚시를 간 탓에 아침일찍 버스로 출근을 하고는 저금통(지난 여름 홈키파통에 테잎을 둘둘 말아서 동전이 생기면 넣곤했다)을 꺼내어 좍~~ 쏟아 부었다.

어쩌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으면 이번 여름휴가는 가뿐하게 즐기리라... 설마 하나쯤은.. 하는 기대에 부풀어.

몇개를 지나쳐도 1989년이 보이질 않아 노안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본다.

그래도 보이지 않아 끼고 있던 안경탓인가 싶어서 안경을 벗고 다시 내려다보아도 당최 1989년이 보이지 않는다.

40여개의 동전을 들여다보아도 어찌그리 그 숫자만 빠져 있는지.  희한하기도 하다.

100원짜리 동전은 1989년 것이 7개가 있어서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F (매우 흔함)

ㅋㅋㅋ

 

불로소득은 신앙인들이 가질 마음이 아니란 것을 다시 깨닫고 열심히 벌어서 진정한 내 것이 되어야만 내가 누릴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덕분에 1989년이 내게 얼마나 행복한 시절이었던지를 확인하니 이 또한 감사하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한 시절을 잊은채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 기억하고 불만하고 불평하던 내가 부끄럽다.

 

1989년,

500원 동전하나 내 손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때 내가 누렸던 기쁨과 행복은 나를 지탱해 주는 칼로리 높은 자양분이었음을 진정 감사하는 아침이다.

 

*추신: 낚시 다녀온 남편이 하는 말,

           1989년이 아니고 1998년이라고..   맙소사^^*

           그야말로 나는 왜?  ㅋㅋㅋ 

           다시 뒤졌지만 이번에는 100원짜리도, 500원짜리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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