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그대와...

커피 한잔

여디디아 2015. 9. 7. 16:05

 

 

 

2015년  9월  5일 토요일 낮 12시

20대의 그 아름다운 꽃띠 시절, 서울제일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찬양대 대원으로, 청년부 임원으로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잘 나가던 청춘시절이 난들 왜 없었겠습니까?

교회에서는 남자청년들이 내 자취방 전깃불이 나가길 기다리며 시도때도 없이 형광등 교체해 줄날만 기다리는 청년들이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괜찮은 남자 소개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늘어선 적이 왜 없었겠습니까?마는 옛날이 되고 말았으니.. ㅋㅋ

서울제일교회에서 가장 친했던 친구, 결혼 후에도 가끔 연락을 하지만 늘 어제 만났던 것 같은 친구 은경이 딸 지혜의 결혼식이 양구에서 있다는 연락을 여름에 받았었다.

 

며칠전 인제 자작나무숲을 다녀온 동생이 언니랑 꼭 다시가고 싶다길래 두 자매가 야심차게 약속을 했다.

은경이네 결혼식장에 갔다가 인제 자작나무숲에 들리기로..

 

금요일 저녁, 한가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어 서방이 밤낚시를 다녀오겠다고 일찌감치 소양강으로 향하고 나는 밤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텅 빈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우체국에서 내일모레까지 꼭 해야하는 현수막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껐던 컴퓨터를 다시 켜고, 들었던 가방을 다시 내려놓고 시안을 잡아서 우체국으로 보내고.. 핸드폰으로 인터넷 전화로 일반전화로 우체국으로 서방으로, 여기저기로 전화질을 하다보니 정신이 까무룩하다.

자리를 펴자마자 다시 걷어서 사무실로 돌아온 서방과 밤 늦도록 일을 하다가 은경이에게 전화를 하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한낱 물거품이 된 자매의 주말계획의 무산됨을 알렸다.         

토요일 아침, 아무래도 아쉬워 동생과 둘이 남양주시청에서 평내로 내려오는 2시간짜리 산행을 마치고 서방과 함께 남양주전체를 돌며 현수막을 게시하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도 말짱하던 날씨가 진건으로 들어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장현을 돌고 광릉을 돌고 진접우체국앞으로 이르니 여름비처럼 내리기 시작한다. 아침에 간단한 산행이지만 땀이 흘렀고, 반팔의 티셔츠 아래로 나온 팔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비를 맞으며 일하는 서방을 돕자니 이가 맞부딪칠만치 춥다. 

배낭에 커피물이 들었는데 그걸 들고오지 않아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한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여기저기 CCTV 때문에 차를 아무데나 주차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커피를 찾을 여가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진접우체국앞에 다다르니 비가 잠시 그어지고 주차공간도 넓어 현수막을 설치하는 서방을 두고 자판기를 찾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에 음료수 자판기가 보이길래 동전을 들고 뛰어갔더니 말 그대로 음료수만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여기저기 아무리 둘러봐도 커피자판기가 보이질 않는다. 그제서야 요즘 식당마다 커피가 놓였고 작은 가게마다 커피가 진열되어 있으니 그러잖아도 세균이 득실거리니 어쩌니 하는 자판기가 있을리가 없다.

 

음료수 자판기앞 아이월드 안경점이 있기에 들어가 자판기가 어디쯤에 있는지 여쭈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커피자판기 여깄는데요. 지금 제가 커피 물 붓고 있잖아요"라고 하신다.

'본인은 지금 커피에 물을 부어서 마실 수 있지만 커피 한잔이 간절한 나는 자판기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데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아저씨 말씀이,

"이 커피 드셔요"라며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내게로 건네주신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저 아저씨도 한잔 드려야지요"라며 맞은편에서 일하는 서방 커피까지 챙겨주신다.

마치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리브가를 만났을 때, 물 동이를 기울여 종에게 물을 마시게 한 후

 "당신의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소서" 라던 리브가를 만난 듯하다.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커피 한 잔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다니...

역시 사람사는 세상엔 어울더울 모여 엉크러지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 보다.

굳이 까칠하게 굴 것도 없고, 조금 있다고 해서 갑질이나 하며 군림하려는 어줍잖고 시건방진 모습으로 살 필요가 없음을, 

아니 그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신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일을 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고 싶으셨는지...

커피 한잔이 너무나 간절한 나를 위해 하나님이 미리 예비해 놓으셨던 것이 분명하다.

 

진접우체국앞 아이월드안경점 사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기억하며 저도 그렇게 작은 자를 살필 줄 알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의 온기처럼 세상은 당신으로 하여금 사랑의 온도를 높였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두고두고 이 사랑의 빚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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