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제7일

여디디아 2013. 10. 1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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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일

 

위  화 /  푸 른 숲

 

 

위 화,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남,

1983년 단편소설 <첫번째 기숙사>를 발표

1996년 <허삼관 매혈기>로 세계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중국대표작가로 자리매김

 

중국인이 쓴 소설을 읽어본지가 언제였던가, 

학창시절 읽었던 '펄 벅'의 <대지>가 마지막이었던가,

아니다, 신앙소설을 몇해전 읽었는데 제목이 뭐더라. 가물가물... ㅋㅋ

 

교보문고에서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추천도서라는 신간코너에서 찜했을 때도 내게는 용기가 필요했던거 같다.

낯선 것과의 만남은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이다.

책을 읽고나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은, 살아가는 날들에 대한, 죽은 후에 대한 생각이 윤기를 잃어간 후에 얻어지는 고운 단풍색처럼

은밀히, 그러나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홉시 전까지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보를 받은 양페이가 화장터인 빈의관으로 찾아가는 일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얼굴의 윤곽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고, 수의도 입지 않은 허름한 모습으로 빈의관을 찾아가는 모습에 섬뜩했지만 곧 죽은 양페이가 스스로를 찾아서 빈의관으로 찾아가는 모습과 빈의관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망자의 모습이, 망자에 의해서 그려지는 아주 특별한 내용이다.

 

양페이 어머니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화장실이 급해서 기차 화장실에서 아기를 출산하고 태어난 아기는 기차 철로위에 떨어지고 만다. 이후 양페이의 친어머니는 아기를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하고 결국 아들을 찾게 되지만 이미 아기는 철저히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길러지고 낳은 정 보다는 기른 정으로 인한 가족애를 느끼고 다시 친부모를 떠나 키워준 아버지에게로 돌아온다.

 

양페이의 아버지는 철로공으로 평생 기찻길에서 일을 하다가 죽어간다.

철로에서 작업을 하던 양페이 아버지는 태가 끊어지지도 않은 아기를 주운채로 집으로 향하고 아기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다.

아버지의 친구인 하오아저씨와 리 아줌마의 젖줄과 도움을 받아 양페이를 자신의 아들로 사랑하고 키우느라 결혼도 미루고 있던 양페이의 아버지 양진바오는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자신의 가정을 갖기 위하여 양페이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먼 곳으로 가서 양페이를 바위위에 두고 집으로 돌아온 양진바오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이 밝자마자 기차를 타고 양페이를 데리러 간다. 바위에서 내려온 양페이가 나뭇잎을 덮고 자는 모양을 보며 양진바오는 스스로 자책하고 이후부터 모든 삶을 양페이 위주로 살아간다.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 양진바오가 집을 나가고 돌아오지 않자 양페이는 자신이 하던 모든 일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서지만 결국 아버지를 찾지 못한채 생활고에 시달리고 아버지와 자주 가던 국수집에서 폭탄으로 인해 사망하고 만다.

사고로 인해서 코와 입이 삐뚤어지고 옷이 찢어져 볼품없지만 누구도 죽은 양페이에게 몸도 씻겨주지 않고 수의를 입혀주지도 않고 무덤을 준비해 주지 않는다. 결국 빈의관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양페이는 역시 죽은 후에도 부유층 인사들에게 밀려 화장도 하지 못한채 저승을 떠돌아 다니게 된다.

 

죽은 다음날부터 7일동안 양페이는 이승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한 사람씩 만나게 된다.

이승에서 어떠한 모습이었든지 저승에서도 서로를 알아본다는 사실과 안락한 안식처에 들지 못하고 서성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직설적이다.

 

이승에서 함께했던 리칭이라는 헤어진 아내를 만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함으로 스스로 위로받기도 하고, 셋집에서 함께 살았던 젊은 남여를 만나 그들의 가난과 사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자신에게 친절했던 리 아줌마를 만남으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아름다웠던 그녀가 저승에서도 천사처럼 아름다운 맘으로 헤매는 모습도 만나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빈의관에서 죽은 자들을 돌아보며 언제일지 모를 아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만나기도 한다.

결국 저승에서도 이승에서와 같이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스쳐지난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신실하고 좀 더 책임감있어야 될 이유가 아닌가 싶어진다.

  

이승에서의 가난은 저승에서도 이어지고, 저승에서의 떠돎은 무덤이 없기 때문에 안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표현이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저승에서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죽은 모습 그대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천국으로 입성하지 못하는 자들의 어지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믿는 사람들이 천국으로 입성할 때 믿지 않은 자들이 돌아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모습,

7일동안 헤매이다 결국은 그들이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 거기가 지옥이 아닐까.

물론 이건 순전히 나의 믿음이고 나의 생각일 뿐이다.

 

누군가 한번은 이승에서 작별을 고해야 한다.

죽은 후에 내가 가야할 곳, 영원한 안식처를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글이다.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육신의 생명이 끝난 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에서의 삶 역시 손가락질 당하는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어야 하는데...

 

마음과는 다르게 날마다 순간마다 악한 생각을 하고 미움을 쌓아가고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모습이 청명하고 높은 하늘아래에서 부끄러울 뿐이다.

속물인 나를 품은채로 가을은 열매로, 색고운 단풍으로, 넉넉한 아름다움으로 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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