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무심하고 무정한 세월이 아닌가 싶습니다.
30년 전, 처음으로 주현이를 해산하던 그날,
10개월간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 먹는 중에 뛰어나와서 다시 토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한 순간에 보상받는 날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들을 낳은 사람은 나 혼자인줄 알았고, 마음편하지 않았던 시어머님도,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지배했던 시아버님도
주현이를 낳은 순간, 모든 일들이 시시껄렁해졌습니다.
처음 유치원에 가던 날,
귀여운 모습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반듯한 모습의 중학생이 되던 날, 조금 삐딱한 모습의 고등학생이 되던 날,
멋진 모습으로 대학생이 되던 어설펐던 날, 두려운 모습으로 춘천 102보에 입대하던 날, 울먹이는 모습으로 첫 휴가를 나왔다가 통곡하며 귀대하던 날, 훈련병에서 말년병장까지의 군기를 한순간에 날려버리고 다시 느긋한 모습으로 전역하던 날,
초등학교 3학년에 처음 연애편지를 받아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날, 몇몇 여학생들의 편지를 받고는 귀찮아서 차창을 열고 밖으로 버리고 돌아와 당당하게 자랑하던 날, 고3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와 중랑천을 걷다가 아빠에게 들켜 혼쭐나던 날,
애인과 헤어져 내앞에서 펑펑울던 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으로 마음고생하며 스트레스 잔뜩 받던 날들, 직장을 얻어 밤샘을 하며 일하던 날,
그런 날들이 29년간 나와함께 지나고 있었습니다.
3개월전, 마음에 드는 직장에 취업을 하고 이제서야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으로 직장생활을 즐기기에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리라 생각하기도 하고, 여행경비도 시시로 얻어내리라 다짐도 했습니다.
7월20일 덜컥, 정말 덜컥 결혼을 해야 할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아직 한푼의 여윳돈도 벌어놓지 않았는데..
마치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날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이름표도, 손수건도, 신발주머니도, 책가방도 작은 부분 하나까지 엄마의 손으로 만들어지던 그때 그 모습에서 정말 하나도 변함없이 결혼이라는 대사앞에 마주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아직 며느리의 입장에서 시어머니는 늘 불편하고 껄끄러운 존재인데, 내가 그 자리에 서야 한다는 사실이 부답스럽습니다.
나로 인하여 누군가 불편하다면, 나로 인하여 아들과 며느리가 다툴 일이 생긴다면...생각만으로 이미 스트레스입니다.
어떻게 해야 편안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준비되지 못한 시어머니의 자리,
이게 이렇게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튼 8월 24일 12시에 결혼식을 합니다.
집은 작고 비싼 것(우리형편에는)을 용인에 구했고 어제 웨딩촬영을 했습니다.
이제 또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지.
축복해 주십시오.
부족하고 못난 아들이 한 가정을 꾸려서 잘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역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더위에 건강 잘 관리하시길 빌며... 며칠후 시어머니 이진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