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곶자왈 / 성산일출봉 / 섭지코지 / 김영갑갤러리

여디디아 2013. 4. 2. 10:04

마지막 날 아침의 제주는 주일임을 알려준다.

주변에 교회도 보이지 않아 예배참석은 어려울 듯 하여서 아침에 혼자서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하는 마음은 편치만은 않다.

 

오늘을 위하여 지난겨울에 준비한 레깅스,

몸에 딱 달라붙어서 그냥은 입지 못하지만 겉에 짧은 치마가 덧씌워져 있어서 조금 춥더라도 오늘은 레깅스를 입기로 했다.

평소에 입지 않던 옷을 입으니 옷 만큼이나 마음까지 젊어지고 어려져서 마치 내가 처녀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이다.

짐을 정리하고 프런트에서 체크아웃을 하니 어제 약속한 택시 박영기 기사님이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닷바람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신다.

오늘의 일정을 기사님께 맡기며 마지막 날의 일정을 시작~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먼저 제주도의 아름다운 산책길을 드라이브 시켜주신다고 한다.

이미 정해진 가격, 기름값도 아까운데 이러면 어쩌냐며, 아무래도 아저씨 차는 바닷물을 넣으시나 보다.. 며 기분좋은 마음에 고마움을 담아서 떠들어 본다.

제주의 봄은 밭에서 구르는 하얀 무와 여기저기 뽑은 흔적 가득한 콜라비의 빈 자리와 당근의 남은 풀, 인건비가 나오지 않아서 버려진 아까운 무...가까우면 낑낑대며 줏어가고 싶은 마음은 주부의 마음이리라.

 

이번 여행지에서 곶자왈을 가고 싶었는데 어느 분의 블러그에서 곶자왈에서 뱀이 나왔다는 소리에 포기했었는데

친절한 기사분이 우리를 곶자왈로 데려가신다.

엄청난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곶자왈은 샤러니숲보다 자연 그대로의 살아있는 모습이다.

갖가지의 나무들의 생김새가 어찌나 희한한지, 그리고 보지도 못한 식물과 나무들이 우렁차게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2시간반이면 곶자왈을 전부 돌아볼 수 있다는데 일정탓에 3분의 2만 돌아본채 나오는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했다.

기사분이 특별히 보여주신 나무,  사람의 손이 아이의 고추를 가리는 듯한 신기한 나무를 보며 한동안 웃으며 의미없이 바라보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눈길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아는 사람일 듯하다.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작은 들꽃 하나에도, 이름모를 작은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을 담는 이들의 낮은 마음과 겸손한 마음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곶자왈을 나와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가족들이랑 왔을 때는 다리가 부실한 남편 혼자두고 가기가 미안해서, 교회팀들과 왔을 때는 같은 회비로 누구는 오르고 누구는 남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지만 꺼리를 만들면 그 또한 꺼리가 될 것 같아서 성산일출봉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갔기 때문에 한번도 오르지 못했던 곳이라 이번엔 꼭 오르고 싶어진다.

기사분이 다리 아픈 언니를 철새도래지로 모시겠으니 둘이서 다녀오라는 말에 동생과 바닷바람이 섞여진 제주의 봄 사이에서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길은 오르막이 심해서 새롭게 길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해도 80%는 중국인, 15%는 일본인, 나머지 5%는 귀하고 귀한 한국인이고 그중에 나와 현숙이가 서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서귀포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제주의 아늑한 평화가 우리의 발길을 제주에 붙들어매고 싶어지게 한다.

중간에 쉴 수 있는 쉼터가 여러곳이 있어서 여전히 우리 자매는 커피 한잔에 행복해 하며 그윽하게 마주본다.

 

그동안 언니는 철새도래지에서 철새도 보고 여러가지 식물과 꽃도 구경하며 기사분이 찍어주신 사진을 보니 모델이 따로 없다.

섭지코지로 향하는 길에 성산바닷가 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세찬 제주바닷바람을 경험하기도 한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문어라면'이 유명하다며 '경미네집'으로 우리를 인도한 아저씨, 

문어와 바지락과 여러가지 해삼이 들어간 라면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서 매콤한 맛 때문에 라면특유의 느끼한 맛을 느낄 수 없어서 좋다. 처음부터 소라 타령을 하던 동생을 위하여 소라 한접시를 주문했는데 세 마리의 소라가 토막쳐져서 나온다.

2만원의 가격에 비하여 맛과 양 모두가 별로다.

1인분에 5천원 하는 라면은 굿~,  평소에 자리가 없어서 줄을 길게 서서 1시간씩 기다려야 한다는데 오늘부터 가게를 확장한 탓으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먹는 행운을 누렸다.

 

섭지코지,

다섯번의 제주여행에서 한번도 빠지지 않던 곳이지만 아름다운 섭지코지를 언니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어 선택한 코스이다.

외돌개와 섭지코지는 워낙 유명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탓으로 손이 많이 타서 아쉬움이 가득하다.

에메랄드빛의 바닷물도 색이 바랜듯 하고 오롯한 오솔길도 퇴락해가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다행히 노란유채꽃이 만발하여 위안을 삼아본다.

 

섭지코지에서 다시 김영갑 갤러리로 가는 길은 가까운 곳은 아니다.

이중섭미술관을 갈 계획을 취소했는데 김영갑갤러리가 더욱 괜찮을거라며 기사분이 안내한다.

김영갑님은 사진작가이며 이미 돌아가신 분이다.

제주가 좋아서 제주에서 눌러 앉아서 제주의 오름과 제주의 나무, 제주의 자연을 작품으로 남기셨다.

갤러리를 공원처럼 꾸며 놓아서 둘러보는데도 지루함이 없고 수선화와 동백꽃, 조각품들을 곳곳에 전시해 놓아서 아름다운 동화속에서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제주의 벚꽃을 구경시키겠다며 비행시간이 다가오는데 기사분이 제주대학으로 우리를 데려가신다.

아직 활짝 피어나지 못한 벚꽃은 붉은 꽃망울을 머금은채 성질급한 놈부터 하나씩 꽃봉우리를 터트렸다.

환한 벚꽃길에서 기념촬영만 한채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콩을 볶는 듯이 조마조마하다.

무인카페에서 커피 한잔하자던 기사분도 시간이 없으니 커피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시며 오후 4시에 우리를 제주공항 국내선 탑승장에 내려주시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4시55분 진에어,

자리를 잡고 앉으니 사흘간의 여행이 꿈인듯 하고 언제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아쉬움만 가득하다.

 

제주의 푸른바다위를 날아서 신랑이 기다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5시50분,

혼자있으니 허전하더라는 신랑을 보니 악처라도 곁에 있는것이 좋은가보다..싶어진다.

돌아올 곳이 있어서 더욱 행복했던 여행,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떠난 여행,

사랑하는 남자들이 든든하게 응원해준 여행,

쉽지 않기에 더욱 소중한 여행,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 새로운 일상에 양념처럼 끼얹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진옥 여사의 제주여행기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