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토요일,
어제 올레 7코스를 돌았고 풍림에서 한화리조트로 왔다.
풍림콘도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많아서 늘 벅적거리고 시끄러운데 비해 한화리조트는 가족들이 오기 때문에 조용하고 평화롭다.
어젯밤은 정말 밤이라는 생각만 들 정도로 깜깜하고 편안한 밤이었다.
굿잠을 자고난 아침은 생기가 가득하고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몇년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나는 오랫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기분이 좋다.
역시 부지런한 내가 먼저 일어나 준비해온 찹쌀과 팥으로 찰밥을 짓고 불고기를 굽고 깍두기와 깻잎과 멸치볶음과 언니가 무쳐온 고들빼기로 아침상을 준비했다.
특별히 찰밥을 좋아하는 세자매가 한공기씩 비우고나니 아침부터 속이 든든하다.
프런트에서 콜택시를 부탁하고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택시가 도착했다.
한화에서 샤려니숲은 기본요금이 나올만치 가까운 거리이지만 콜택시라 만원을 지불했다.
이번여행에 꼭 가고싶었던 샤러니숲길,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가 같은 마음인 듯하다.
평화롭고 아늑하고 깨끗한 숲, 오롯한 오솔길이 절로 걸어다니게 만들고 저절로 웃게 만들고 저절로 노래하게 만든다.
여전히 청안이씨 둘째딸과 셋째딸, 그리고 막내딸은 걷는 것보다 촬영이 우선이다. ㅋ
함께 색상별로 맞춘 츄리닝을 입고 이리저리 걸어보고, 앉아보고, 서성거려보고, 달려보고...다리를 꼬아도 보고, 다리를 들어도 보고, 팔짱을 껴보고, 위아래로 하릴없이 들었다 올렸다를 반복도 해보고..
어느 각도가 날씬하며 어느 각도가 예쁜지, 예쁘지 않은 폼은 어느 것인지,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자는 어느 것이 어울리는지를 생각하며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는다. 물론 가장 미인인 막내딸이 외모에 더욱 열심이고 그중 나는 가장 관심밖이다.
천천히 숲길을 걸으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하다.
복수초 군락지라고 하더니 노란복수초가 무더기로 피었고 알지 못하는 나무들이 아름드리 서 있고, 울울창창한 삼나무가 저절로 피톤치드를 우리에게 흡입시키는 듯 하다.
물찻오름은 6월말까지 휴식기라서 붉은오름쪽으로만 걸어야 하는데 10km의 거리이다.
일반인들이 걸으면 2시간 30분의 거리이기에 오전에 우리가 걷기엔 안성맞춤인 듯 싶었지만 다리가 아픈 언니 때문에 천천히 걷다보니 6시간을 걸었다는 이야기...
곳곳에서 구경을 하고 쉬다보니 삼나무숲길이 나타난다.
삼나무 키가 어찌나 큰지 하늘에 닿을 듯하다.
삼나무길 산책로를 찾아서 들어가는데 입구를 잘못 찾아서 동생과 한바퀴 빙~ 돌다보니 길이 끊어져 무섬증까지 느끼고 지난 봄에 올레길 사고가 섬뜩하니 떠오른다.
다시 입구로 돌아와서 산책로로 들어서니 삼나무 사이로 오솔길이 있고 나무에 하얀 리본을 묶어놓음으로 길을 잃지 않게 안내한다.
삼나무숲길을 지나 붉은오름쪽으로 걸어오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탓으로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오후일정이 애매할 뿐이다.
올레5코스 큰엉해안을 걸으려고 했는데 언니가 다리가 아파서 힘이 들어한다.
결국 리조트로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는데 고맙게도 기사분이 다랑쉬오름을 안내하며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다랑쉬오름에서 1시간20분을 무료로 대기해 주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다리아픈 언니는 기사분과 '세세세'를 하기로 하고 동생과 둘이서 다랑쉬오름으로 향했다.
382m이지만 직각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시간은 단축되고 단축된 시간만큼 다리가 힘이 든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동생을 바라보며 오름을 오르는 동안 제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벚꽃이 피었고 타이어 같은 고무를 길에 깔아 놓았기 때문에 오르막 길에도 미끄럼을 방지해 준다.
그렇지만 한 눈을 팔거나 자만하면 한번에 아래로 굴러 내릴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오름을 올라 정상을 바라보는데 입이 벌어진다.
커다란 분화구가 아가리를 벌린채 우리앞에 놓여있는게 아닌가!
오른쪽으로 오르면 너무 힘이 드니 왼쪽으로 오르라던 기사분의 말씀에 왼쪽으로 정상에 오르니 한결 편안하다.
오름이 이렇게 멋진 곳인줄 몰랐으니 앞으로 제주여행에는 오름을 빠트리지 않아야겟다는 생각을 한다.
기다리는 언니를 생각하며 동생과 내려오니 한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기사분이 제주달래를 한웅큼 캐서 우리에게 건네신다.
탐방객을 맞이하는 사무실 아저씨는 검은 비닐봉지를 손수 갖다주시며 친절을 베푸신다.
제주도의 순박한 인심이, 사람과 사람간의 따뜻한 마음이 자연의 아름다움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분들을 통하여 배운다.
다랑쉬오름에서 리조트로 오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리조트 식당에서 회를 주문하니 中인데 50,000원이며 매운탕을 추가하면 2000원이 추가된단다.
매운탕을 추가시켰는데 주인아저씨가 서비스 하겠다고 하시니.. 어딜가나 우리의 미모와 인기는 치솟기만 한다는 사실을... ㅋㅋㅋ
센스있는 막내가 마트로 달려가 소주 한병을 사왔다. 물론 나는 생각조차 못하는 일이다.
혼자 마시기 멋적은 언니가 우리에게 한 모금씩 건네주고, 우리는 거기에 매실을 보태고 물을 보태서 주스같기도 하고, 매실같기도 하고, 누군가 먹다버린 음료수의 시큼함같기도 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후, 막내를 보며 우리중 가장 뚱뚱하다며 술 주정을 하는 언니를 바라보니 동생에게 내가 민망하다.
가고팠던 샤러니 숲과 생각지도 않았던 다랑쉬오름을 생각하니 마음속 가득하게 차오르는 무엇이 있다.
아무래도 충만함이 아닐까 싶어진다.
저녁식사 후, 술 때문에 일찍 잠든 언니를 바라보며 티브이앞에 누웠는데 잠이 우샤인 볼트처럼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달려온다.
8시가 되지 않은 초저녁에 우리는 또 굿잠속으로 빠지며 하루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기 위하여 달려간다.
제주의 푸른 바다와 흰 파도와 푹 파인 분화구가 오늘은 우리와 함께 봄잠을 잘 것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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