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스토리

시어머님 전도

여디디아 2012. 12. 31. 14:04

 

 

 

 

 

1983년 10월 어느날..

2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천리길을 달려오신 엄마와 큰오빠와 내가,

정릉에 살고 계시던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을 모시고 신랑이  만난 곳은 종암동의 어느 다방이었을까.

가물거리는 기억속에 장소는 생각나지 않고 여전히 시골에 계시는 엄마는 딸 가진 죄인의 모습으로 고개를 수그리며 앉아 계셨고

그때나 지금이나 겸손한 것은 남의 밑으로 수그리고 들어간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어머님은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교회 다닌다는 나를 향하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교회 못간다'며 대못을 콱콱 두드렸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예나 지금이나 자존감이 꽤 강한 큰오빠는 내게 당부를 하셨다.

'니네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교회 나가지 마라'는 확인사살을 잊지 않으셨다.

 

결혼식 날, 종로에 있던 서울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던 그 날, 

서울제일교회 유초등부 어린이들이 노란 가운을 입고 막 뜨기 시작한 '사랑'이란 CCM을 부르는 동안 못마땅한 시어머니는 고개를 외로 꼬고 잔뜩 심통난 모습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신혼 초,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신랑은 주일아침마다 외출한다는 빌미로 예배하는 나에게 길을 터 주었고

6개월이 지나 따로 살림을 할때부터 나는 조금의 거리낌 없이 교회에 나갔고 주현이가 세상에 태어난 후에는 주현이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은 예배가 지루했고 교회가 적응되지 않는 곳이었다.

 

결혼후  6년, 서울의 전셋집 값은 날마다 치솟았고 그보다 아들 둘이란 이유는 전셋집을 구하는 조건에는 악조건이었다.

어느 날 신문에 남양주 삼창아파트 분양을 보고 신랑이 달려와 확인하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평내교회를 확인하고 자기도 교회가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여기까지 왔다.

물론 신랑의 약속은 쉽게 지켜지지 않았지만 결혼생활 15년이 되었을 때 세례를 받았고 25년이 지난 날, 안수집사라는, 서리집사인 나보다는 한발앞서 중직자가 되었다.

 

12월 20일 목요일,

우리집으로 오신 시부모님을 교회로 인도해야하는데 남편은 '천천히 하자'를 권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단번에 시작한다'는 생각을 했다. 

토요일 저녁, 시어머님께 '내일 저랑 교회 같이 가세요'라고 하니 대략난감이시다.

'오늘은 피곤하니 다음에 가겠다'고 하시길래 일주일을 전도대상자로 생각하며 섬기고 세웠다.

다시 토요일 밤, '내일 저랑같이 교회가요'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신다.

 

주일아침 제일 멋진 옷으로 갈아 입으시고 시아버님이 모자와 장갑까지 챙겨주시고 나는 '영화배우 같다'는 칭찬을 퍼부었다. ㅋㅋ

교회버스를 탔는데 옆에서 집사님들이 환영을 하는데 여전히 자존심과 허세로 인해 고개를 까딱이며 대꾸도 제대로 안하셔서 나를 민망하게 한다.  도대체 저 허세는 뭘까...안타까워진다.

예배를 마치고 목사님과 면담이 있다고하니 인상이 달라지셨지만 주위에서 멋지고 이쁘고 젊으시다는 칭찬이 릴레이로 이어지자 마지 못한듯 새가족실로 향하신다.

목사님의 말씀 후, '예수님을 믿으십니까'라는 질문에는 품위있고 고급스럽게 '예'라고 대답하신다.

영접기도를 드리는데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마음속 깊은 데서는 30년전의 일들이 영화처럼 보인다.

 

이제서야 내가 큰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를 전도했으니 이제 시아버지 차례이다.

새해에는 시아버지도 전도해서 온 가족이 예수님만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하며

아울러 새해 계획이 되고 말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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