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스토리

반지

여디디아 2015. 4. 23. 10:52

 

 

며칠전 내린 봄비로 세상이 환하다.

겨우내 켜켜로 묵었던 땟국들이 하루종일 내렸던 봄비에 말갛게 씻겨나가고 정갈한 봄길위로 황톳빛 흙들이 자리를 찾아들고, 죽은줄 알았던 고목에서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여기저기서 진달래와 산벚꽃이 벗을 이루며 어울렁더울렁 피어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봄날이다.

이 고운 봄날이 가기전에 단 한순간이라도 붙잡으며 즐기는 것만이 내것이 되는 것 아닐까?

 

화요일 저녁,  늦은 퇴근 후 수요일아침을 준비하고 읽지 못한 책을 2~30분간 더듬거리며 읽고 잠자리에 들려는 시간은 11시가 넘은 시간이다. 초저녁부터 늦은 아침까지 주무시는 아버님이 어쩌자고 거실로 오신다.

 "내일 네가 좀 알아봐라"는 뜬금없는 말씀에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알아보느냐?"며 서방이 육하원칙을 들이대며 묻는다. 옆에선 나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

아버님 얼굴을 보니 분노가 가득하다.

아~~ 또 무슨 일일까? 생각조차 버겁다.

 

"오늘낮에 어머님이 노인정에 가셨다가 오후 4시쯤 들어오셨는데, 손가락에 끼어있던 쌍가락지가 없어지고

대신 신주로 된 이상한 반지를 끼고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박해임 집사님이 이사가신 후로는 노인정에 거의 출입을 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갑자기 노인정이라니, 반지를 바꿔 오셨다니...

다섯돈 짜리와 가짜 반지를 바꾸어 오셨다는 것이다.

주무시는 어머님의 손가락을 보니 오른손 왼손에 반지가 끼어져 있다.

자세히 보니 사진에 있는 것은 분명히 어머님 반지고 다른 손에 끼어있는 반지가 낯선 듯하다.

 

새벽 5시가 되자마자 화장실을 들락거리시며 세수를 하시고 반지를 찾아야 한다고 난리이다.

늦게 잔 잠인데, 6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은근히 짜증이 나지만 반지를 잃어버리셨으니 밤새 못 주무실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출근과 동시에 남편이 다시 집으로 가서 관리실에 들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노인정에 가서 다시 사정을 알아보고 결국 화도파출소에 가서 신고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한치 건너 두치던가.

잠도 못 주무시고 설치는 시아버지, 반지 5돈이면 돈이 얼마인데, 당연히 남편 또한 허둥거리는데

나만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사진에 있는 반지는 어머님이 끼고 있었던 반지인데 아버님과 남편은 아니라고 하고.. 다른 손에 낀 반지는 어머님거라고 하니...

아버님가 남편은 내가 의아해 하는 반지가 어머님것이 틀림없다고 하고, 내가 보기엔 두분이 아니라는 반지는 어머님것이 확실한데..

갑자기 시아버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딘가 빼놓은 것을 노인정에서 다른 할머니가 바꿔치기했다고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든다.

 

점심 식사 후 내가 집으로 가서 노인정에 들렀다.

맙소사.

"그집 시어머니 노인정 안오신지 오래 되었어.  어제 오지도 않았는데 아침부터 우리를 의심하고 관리실에서도 두번이나 다녀갔다"며 서운해 하신다.

물어보고 말 것도 없이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와서 어른들 방으로 갔다.

"혹시 다른데 두신것 아니냐?"는 나의 말에 당치도 않다는 듯 절대로 그런일 없다고 시치미를 떼신다.

무조건 내가 찾아나서기로 했다.

처음으로 서랍을 열었는데 없어졌다면서 누군가 바꿔치기 했다던 반지 하나가 떡~하니 들어있다.

 

결론은 이렇다.

어머님이 쌍가락지 중 하나를 서랍에 넣어두셨는데 어느순간 아버님 눈에 반지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종일 같이 계시던 어머님을 노인정에 간 것으로 생각하시고 거기서 누군가가 바꿔치기했다는 것이다.

근래들어 나를 자꾸만 의심하신다.

며칠전에는 통장이 없어졌다며 탁자에 놓여진 내 책을 한장씩 다 뒤지신다.

그리고 어머님 옷에 든 돈이 없어졌다며 역시 나를 의심하신다.

이제는 노인정까지 들추며 의심을 하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병원에 가자고 통사정을 해도 "난 까딱없다. 난 똑똑하다. 미친놈 취급하지 마라"고 우기신다.

누구에게든 우리가 없을 때는 며느리 흉 보기에 여념이 없으시니 당신 아들과 딸들은 나를 얼마나 욕을 할까?

제발 이중적인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참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자고 봄꽃은 오늘도 저리 만발하고 봄볕은 또 저리도 화사한 것인지.

검은 숯덩이 처럼 타들어가는 내 속은 모른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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