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행 운
김애란 / 문학과지성사
비행운..
김애란의 신간 '비행운'이란 책이 눈에 띄었을 때,
비행운의 뜻이 무얼까... 싶었다.
非幸運, 飛行雲
결국 기다리는 행운보다는 오지 않는 비행운이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에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의 이름을 비행운이라고도 하는,
어쩌면 막연한 행운을 기다림은 구름으로 가려진 삶의 방향이 아닐까 싶어진다.
김애란의 비행운 안에는 중단편의 글들이 실렸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는 장편소설이라고 되었는데 막상 책을 마주하고 나니 장편이 아니라 조금 실망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속 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큐티클
호텔 니약 따
서른
'너의 여름...' ' 물속 골리앗'과 '그곳에 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읽은 내용이지만(어느새 작가는 잊고 있었다) 다시금 천천히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김애란의 소설은 우리들 일상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특히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의 사람들의 지치고 피곤한 모습과 서러운 시간들이 낱낱히 파헤쳐진다.
직장을 잃고 식탐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찐 여자의 분노와(너의 여름..) 가난한 신혼부부의 집 장만을 위하여 걸어가는 시간속에 겪게되는 핍절한 삶의 모습들, 더 나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는 남자와 한푼이라도 아끼려는 임산부의 숨가뿐 이야기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단편임을 나타내준다.(벌레들)
재개발로 인하여 철거명령이 떨어지고 이웃들이 하나씩 둘씩 이사를 가지만 갈 곳이 없는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텅 빈 아파트에서 물난리를 겪게되고 이미 숨을 거둔 엄마를 홍수속에서 지키려는 발악과 떠밀리면서도 살려는 의지로 무언가를 꽉 잡아야 하는 간절함(물속 골리앗)은 매스컴을 통해 듣고 있는 역시 우리이웃들의 가난하고 지난한 이야기들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하루의 축',
백화점 청소를 하며 아들하나를 길러내는 기옥은 추석휴일을 위해 고기를 준비하고 쌀밥을 준비하고 떡을 준비한다.
착하고 성실한 아들 하나만 바라보는 기옥의 삶의 배반은 결국 믿었던 '아들'이지만 그 아들의 한번의 실수를 이미 용서한 기옥은 복역중인 아들이 돌아오는 날, 새로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란 마음으로 빠진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며 화장실 바닥을 닦고 누군가 버린 과자를 집어먹고,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득찬 갖가지의 쓰레기를 버리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출근길에 받은 익숙한 글씨는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의 글씨이고, 퇴근길 공원벤취에 앉아 설레며 아끼며 개봉한 편지에는 '엄마, 사식 좀'이란 글씨만 쓰여있다.
모든 삶의 이유가 무참하게 짓밟힘을 느낀 기옥은 추석휴일의 근무를 자청함으로 자신의 참담함을 대신하고 있다.
큐티클과 호텔..은 여자들의 심리를 잘 드러내 준다.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허영심을 부추기는 간판들앞에서 머뭇거리다 결국엔 일을 저지르고, 그러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는 일상(큐타클),친구와의 여행에서 겪게되는 일상의 에피소드, 세상에 이렇게 좋은 친구가 있을까 싶은 마음이 며칠이 못가 못마땅하고 불편하고 흉을 보고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그것, 의자에 떨어져 앉아 서로의 마음을 생채기내는 여자들의 고만한 마음밭을(호텔 니약따) 조목조목하게 그려내고 있다.
서른...
역시 마음에 닿는 글이고 이 시대에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내용이다.
재수생시절, 노량진의 원룸에서 만난 임용고시 준비를 하던 언니에게 쓰는 편지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언니는 얼마전 교사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고, 재수생이던 나는 서울의 무난한 대학을 나왔지만 취직을 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어느날 대학시절에 잠시 사귀던 남자로부터 전화가 오고 그 남자네 돈을 잘 벌고있다는 회사로 들어가지만, 다단계판매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철통같은 감시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된다.
학원강사로 있던 시절, 유난히 잘 따르던 제자 혜미를 끌어들이고 자신은 빠져나오지만 이후 혜미의 전화도 문자도 받지 않음으로 혜미를 수렁으로 빠트리고 자살시도에 이르게까지 한다.
여전히 서울시내 한복판에는 정장을 입은 대학생들이 철통같은 감시속에서 다단계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아찔하다.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316p)
이 몇줄의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돈과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 질 때마다 한 손을 짚어왔고 여전히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내 앞에 놓인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멀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때..
정말 그것이 무엇일까.
비행운속에 들어있는 모든 이들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아니 런던올림픽을 함께 바라보며, 함께 웃으며 함께 아쉬워하며
함께 박수를 치는 우리모두가 바라보는 그것이 정녕 무엇일까.
찌는듯한 이 무더위도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날,
내 마음속에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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