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주현아^^*
수요일, 출근하는 부자 사이에 끼여 산행을 위하여 금곡으로 향하던 길,
겨울맛이 조금 느껴지던 아침, 희부연 안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을까, 오늘 하염없이 걸어 올라갈 백봉산 정상을 바라보는 그쯤에서, 라디오에선 네가 녹음한 장재인과 김지수가 함께 부른 '신데렐라'가 하루를 열어젖히던 그 시간에 뒷자리에서 등산복을 입고 불룩한 배낭을 옆에 끼고 얼굴을 앞자리로 쏘옥 들이밀며 내가 조잘대었었지?
"있잖아, 요즘 촘촘하게 누벼져서 화려한 색깔로 아주 가벼워 보이는 잠바 말이야. 난 그거 하나 입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말한건 아빠를 향한건지, 너를 향한건지,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양주시청에서 내려 금곡 홍유릉을 지나고 평내로 향하고 다시 화도로 내려와 집에 들어왔을 때는 정확히 4시간이 지난 후였다.
채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
"지금 주현이가 집으로 갔으니 기다려"라는 말.
출근할 때 보던 네가 초겨울 한낮이 한창 겨울햇빛을 태우던 시간에 지갑을 챙기고 나와 함께 잠바를 사러가자고 했을 때,
'약발이 이렇게 빨리? 내 말이 호소력이 있다는 소리는 가끔 들었지만 설마 몇시간만에 벌써?'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흩날리며 '돈도 없을텐데 네가 왜?'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접대멘트로 날리고 따라나서는 발걸음은 즐겁기만 했다는거, 너 이미 눈치챘었지?
"사실은 12월 11일 결혼기념일에 엄마 아빠 커플룩으로 거위털 잠바를 선물하려고 지난달과 이 달에 돈 하나도 안쓰고 모으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엄마 말을 듣고 아빠가 당장 사러갈 기세여서 내가 이야기했더니 이왕 사려면 지금 사주라고 하셨다"며 꽁꽁 숨겨둔 돈을 가지고 나를 이끌어낼 때 얼마나 대견하고 흐뭇하던지. 속에 들어있는 내장들이 좋아서 밖으로 튕겨져 벌건 빛으로 툭툭 나오는줄 알았다니까~~.
주현아^^*
너와 함께 쇼핑하는 것이 참 오랫만이었지?
중고등학교 때부터 너와 쇼핑을 하면 예상했던거 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거 너 알지?
그런줄 알면서도 나는 너와 함께 쇼핑하는 것이 늘 즐겁기만 했더란다.
졸업을 하고선 함께 쇼핑한 것이 거의 처음인 듯 하구나.
평내를 뒤지고 텔레비젼을 몇번이나 탄 오렌지를 들리고..결국 마석을 뒤지고 다시 답내리 매장으로 향하던 시간까지,
이왕이면 거위털로 사자는 네 말에 가격을 염려하던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단다.
'아들이 선물할 땐 조금 무리수가 보여도 참자, 그래야 이 담에도..'라는 계산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후후
그렇게 고르고 고른 잠바이다.
입어도 입은 것 같지 않고 손에 들어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옷,
아빠가 깜짝 놀라며 자기 것은 필요없다면서도 입이 귀에 걸린거 봤지?
선물은 늘 좋은 것이지만 아들로부터 받는 선물은 더욱 귀하고 더욱 기쁘고 행복하다는 거, 너도 부모가 되고 자식을 키워봐야 알 수 있을게야.
사랑하는 주현아^^*
고맙다.
더 이상의 군더더기 같은 말들은 가슴에 담아두마.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해마다 정성을 다하고 무리를 하며 선물하는 네가 감사할 뿐이다.
올 겨울은 잠바 때문에 춥지 않을 것 같구나.
몸도 따뜻하지만 마음이 훨씬 따뜻함으로 이 겨울 어떤 추위가 닥칠지라도 든든히 이겨낼 수 있을거야.
참, 지난 여름에 갱년기 엄마를 위하여 역시 무리를 해서 선물해준 '석류의 아침'도 고마웠다.
덕분에 갱년기의 증세들도 말끔하게 이길 수 있었다.
사랑하고 축복한다, 우리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