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제주올레 셋째날..

여디디아 2009. 6. 22. 10:46

 

 물고기카페와 카페에서 바라보이는 풍경

 

 

이른아침에 서울로 떠나신 김주영선생님의 빈 자리가 크다.

구심점을 잃은듯이 어딘가 허전하고 모두가 빙빙 도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어우러지려는 성숙한 모습들을 보니 또한 마음이 푸근해진다.

 

풍림콘도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는데, 어젯밤 늦게까지 소곤거리던 룸메이트는 식사가 끝날무렵에 나타나 모두들 맛있게 먹은 해장국을 께작께작한다.

다섯살짜리 아이가 밥 투정을 하듯이, 딱 그 모양으로..   

 

외돌개에서 월평포구까지 걷는 일정이지만 그 코스보다는 역으로 가는 길이 더욱 멋지다는 이종주선생님의 말씀에 풍림콘도에서 시작하여 외돌개까지 걷는 길이다.

바닷가를 중심으로 걷는 길, 처음부터 돌을 밟으며 바위를 딛는 걸음이라 난이도가 다른 날보다는 높다. 그러나 곁에 펼쳐지는 너른 바다와 쉼없이 다가드는 하얀파도를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는 길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외돌개로 가는 길에 천지연폭포앞을 지나갔지만 관광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 모두를 외면하며 걸었다. 

특히 썩은섬이라는 섬은 인상적이다.

이름그대로 바닷가에 떠밀려온 불순물들은 썩은 잎과 쓰레기, 자갈들조차 거무티티하다. 어쩐지 바닷물조차도 구정물인듯 싶어지는건 섬의 이름탓이다.

 

거부(巨富)라는 식당을 보며 이러쿵 저러쿵 방아도 찧어보고...    

나름대로 큰 뜻으로 이름을 지었을테지만 한글이 커다랗게 씌어진 식당은 마치 우리를 拒否하는듯 하여 통과.. ㅋㅋ

 

외돌개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길이 붐빈다. 주말을 맞이하여 걷기를 하는 가족들이 많고 제주도에 사는 아줌마 부대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외돌개를 감싸는 긴긴 길들은 정말 편안하기도 하고 멋지기만 하다.

홀로 서있는 외돌개를 바라보며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이에 한시간이 순간처럼 지나가고 말았다.

여름에 가족들이 꼭 함께 걷고싶은 길이다. 

어제 앉았던 자리에서 봉자(한라봉과 유자를 갈아서 만든 것) 쥬스를 마신다. 시큼하고 달콤하고.. 한라봉의 맛과 유자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외돌개에서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풍림콘도로 돌아와 뷔페식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짐을 싸들고 내려왔다.

주일까지의 일정이지만 토요일 저녁비행기로 돌아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오후 일정속에 적당한 시간에 혼자서 공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걷기로 한 대평포구,

일행들이 일요일은 쇼핑도 하고 시내를 관광하고 싶다고 하여 오후에 8코스의 일부인 대평포구를 걷는다고 한다. 나에겐 행운이다.

 

대평포구는 완전히 바닷길이다.돌로 만들어진 길과 모래사장을 걸으며 기암절벽같은 바위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바위를 보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해병대가 만든 길은 반짝거리는 돌들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신발을 벗은채 맨발로 걸어본다.

'남의 귀한 아들들 군대 보냈더니 돌 날라다가 길이나 만들게 해??' 

무거운 돌들을 나르며 땀을 흘렸을 아들들의 검은 얼굴이 떠올라 한마디 툭 던져본다.

 

대평포구끝에 장선우감독 아내가 경영하는 물고기 카페가 있다.

제주도가 좋아서 눌러산다는 부인, 제주도에 놀러와 제주도가 아름다워서 빈 집에 눌러 앉으며 물고기 카페에서 일을 한다는 어여쁜 여자..

빈집이 많으며 누구든 집을 봐주는 조건으로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은근히 욕심이 생긴다.

'그냥 눌러 앉아버릴까...'

 

애써 피해온 룸 메이트가 다시 소곤거리듯이 말을 걸어온다.

"어젯밤 반쯤은 화해를 했는데 아침 6시 30분에 다시 문자가 왔어요. 당신 조건만 들어주면 나는 뭐냐고...  그냥 이혼하자고.. 정말 이혼해야할까보다"고 한다.

아내의 조건인 즉,

"이제는 무조건 당신 비위 맞추고 살고싶지 않아요. 싸움을 하면 무조건 내가 먼저 사과하고 빌어야 하고, 아무데서나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것도 싫으니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난 당신하고 더 이상은 힘들겠어요".

밤새 남편이 곰곰히 생각하니 그것은 아닌듯 싶었나 보다.

이른아침에 이혼하자는 문자를 보냈으니.. 

더 이상은 내가 왈가왈부 하기 싫어서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물고기카페앞에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중문단지에서 차를 내렸다. 3일간 함께한 일행들이 아쉬워하며 잘가라고 인사를 보낸다.

하루 더 머물다가 내일 같이가자고 하던 이들,

제주도에도 교회가 많은데 굳이 교회 때문에 손해를 볼 거 뭐냐는 이들..

어렵게 갔으니 내일까지 놀다오라는 남편..

그러나 내게는 섬겨야 할 학생들이 있고, 드려야 할 예배가 있으니..

하루동안의 경비나, 하룻동안의 관람이나, 좋아하는 걷기가 전혀 아깝지 않은채로 당당하게 그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낯선 것들과의 만남에서 작별을 하고 이제 익숙한 것들과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행이란 떠나는 즐거움과 즐기는 행복이 있지만,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과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음으로 더욱 충만한 것이 아닐까.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다 길이 막혀서 집으로 간다는 신랑의 전화를 받으니 역시 나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세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기만 하다.   

-------------------------------------------------------------------------부치지 않은 엽서

 

자기야!!

 

허기짐,

무엇에 대한 허기짐일까. 

비릿한 바다내음을 맡으며,

이름을 알 수 없는 꽃과 풀과 나무를 만나며,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끼니때마다 꽉꽉 채운 육신의 배부름 앞에서도 난 허기진 나를 발견하곤해.

1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대한 허기짐,

탈출할 수 없이 채워진 일상의 허기짐,

날마다 만나는 이들의 습관적인 만남속에서의 허기짐,

미친듯이 걷고 걸으며, 허기져 어지러운 나를 조금씩 채우는 이 시간들이 어찌나 감사한지,

충만한 영혼을 만나길 소망하며..

6.12  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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