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5분 간격으로 누군가가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소리로 하여금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던 밤바다의 모습이, 이른새벽엔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삶을 포기한 누군가가 푸른 물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소리를 내고 있을까..싶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화장을 마치고 나올 채비를 하는데 파트너가 속곳차림으로 나를 부른다.
"집사님, 우리 남편 좀 들어와도 될까요?"
틈만나면 남편 흉을 보던 어제의 일을 생각하니 좀 어이가 없다.
"23살의 이쁘고 이쁜 나이에 9살 차이나는 남편이 죽겠다고 사정해서 결혼을 하고 오로지 살림에 충실하며 여자로서 본분을 다하며 자식을 잘 키운 일, 음악학원을 하면서 돈을 벌어들인 일, 자신의 잘못이란 오로지 뭔가를 배우고 배우기 위해 나돌아 다닌 것, 가끔 김치를 사먹긴 했지만 아주 사먹지는 않고 담근 김치가 많다는 것, 춤바람이 나서 밖으로 다니지 않았고 계모임으로 묻지마관광도 하지 않았다는 것" ...밖에는 없다는..
그런 남편이 아이들앞에서 엄마를 무시하고, 친정식구와 친구들, 교회사람들 앞에서도 아내를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음으로 이번엔 아주 버릇을 고치기 위하여 2개월간 말도 하지 않았었노라..고.
그러나 3박4일의 여행은 말해야 할 것 같기에, 그럼으로 자신이 정당한 여행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야기를 한 것 뿐이라고 한다.
"남편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반듯하고 예의바르고,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으며 교회에서 안수집사님이고, 고등부 교사이며 무엇하나 흠잡을데 없는 완벽한 남자"라고..
그런 남편이 제주도엘 간다고 하니 누구와 가나 싶어서 탐색하러 온 것 같다며 아직은 화해를 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레를 치던 여자가 아닌가.
남편이 우리 방으로 들어오니 머리를 감으라고 야단이고 헤어 드라이기가 없어서 머리를 감지 않겠다고 남편은 우긴다.
"당신은 드라이 하지 않아도 멋있어요"라는 소리가 내 방에까지 들린다.
켁~~~
"쌩쇼를 하네..."를 속으로 삼키고..
얼른 밖으로 나오니 지난밤 만취상태이시던 김주영선생님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오신다. 자판기를 찾아 커피 한잔을 드리고 이른아침의 커피를 반가운 마음으로 내 속으로 들이킨다.
누군가 몸을 던지던 바다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고요하기만 하고 제주의 아침은 그래서 더욱 평화롭다.
'수희식당'이란 곳은 모든 직원의 이름이 수희라고 한다.
'주인이 수희이며 직원들은 가명을 쓸테지' 당연한 생각을 하는데 청송에서 오신 순진한 공무원이 기어히 묻는다.
"저기요.. 정말로 성함이 오수희씨 맞습니까?".. 저런..
직원이 바보같은 남자 다본다는 식으로 흘깃한 웃음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장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구나 싶어서.. 성질 드러운 나에겐 개운하지 않다.
전복인줄 알고 먹은 것이 오분자기라고 한다.
경상도에서 먹는 추어탕 같은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어젯밤 한잔 마신 맥주의 기운을 말끔히 가셔낸다. ㅎㅎ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걷는 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먼 바다를 바라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허기져 있었던가.. 싶어진다.
걸어도 걸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보아도 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자연과 아름다운 경관들, 누려도 누려도 공간이 보이는 허전하고 궁핍한 무엇들..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기아로 인하여 질식했을지 모르겠다는 현실..
허기를 채우듯이 걷고 또 걸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담으려는듯이 디카를 들이대며 폼을 잡는다.
외돌개를 가는 도중에 故 고우영 화백 미망인이 경영하는 '안거리 밖거리'라는 식당에 들러 옥돔구이 정식을 먹었다. 16가지 반찬이 정갈하고 화백의 미망인은 아직 젊고 아직 충분히 아름다우시다.
김주영선생님이 이런 분들을 찾아서 음식을 팔아주시는 그 마음이 얼마나 따스한지.
외돌개에 도착하니 허기도 느껴지고 갈증도 심하다.
버스가 오질 않아서 쉼터에 앉아 시원한 냉커피를 한잔씩 마신다.
아~~ 그 맛이라니.
저녁에 문학의 밤이 있고 바베큐 파티가 있을 예정이라 더 걷고픈 마음을 거두고 숙소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룸메이트의 남편은 검정색 정장양복에 검정구두를 신고 우리와 함께 걸었다.
2~3미터를 사이에 두고 앞장서서 걷는 남편을 두고 뒤에서 여전히 남편 흉을 보는 룸 메이트..남편이 들을텐데 오히려 내가 불안하다.
그러면서 자꾸만 나에게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가라고 등을 떠민다. 참내~~.
(물론 나는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안했다.)
저녁은 풍림콘도에 특별히 부탁을 하여 야외에서 바베큐 파티이다.
제주의 꺼먹돼지가 뜨거운 김을 흘리며 허연 살을 드러내고 익어가고 자리돔구이와 여러가지 제주도의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놓였다.
잘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문학의 밤을 즐겼다.
김주영선생님이 나누어주신 '달나라 도둑'을 펼치고 원하는 곳을 읽으라고 하신다.
문학사랑 후원회 회장이신 박문호님이 두고온 고향을 생각하시며 '고향 타향보다 낯설 때'를 낭독하신다.
북에 두고오신 고향,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리움이며 돌아가고픈 품일 수 밖에 없음을... 김주영선생님의 부연설명을 들으니 시큰한 무엇이 눈가로 차오른다.
비로소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꼭 있어야 할 자리의 자갈돌'(p36)을 낭독했다.
안면도의 기름유출사건 후, 어느 할머니가 자갈돌을 씻어서 꼭 그 자리에 채워놓으시는 모습을 그린 글이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있을 그 자리에 있어야만 비로소 그 모습과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저 길바닥에 흩어진 자갈돌보다 작고 무의미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김주영선생님께서 '상상력'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며 우리는 아름다운 상상을 함으로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더 좋은 내일을 위해서 상상하며 나아가는 사람만이 일어설 수 있다는 귀한 말씀을 영화의 이야기와 곁들여 들려주시는 동안 어젯밤 몸을 던지듯이 부셔지던 흰파도도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 있었다.
내일 주례로 인하여 일찍 서울로 가셔야 한다는 김주영선생님이 술도 드시지 않고 일찍 자리를 뜨는 바람에 모두가 일찍 숙소로 돌아갔다.
문학강연동안 너댓시간을 자던 나의 룸메이트는 이제야 잠에서 깨어 먹을 것을 찾고 누군가 남겨온 바베큐를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하며 잠자리에 드려는데 룸메이트가 다시 남편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 걷기가 끝나고 혼자서 서울로 가셨다는 것, 쫓겨나다시피 서울로 돌아가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중에는 내가 다른 방으로 옮기고 자기 부부가 함께 사용하지 않음에 화가 났음도 곁들여져 있다는 말에, 바위에 부딪히던 파도처럼 한대 휘갈겨주고픈 마음이 솟구쳤지만 그 남자가 없다..쉬~~
'집사님, 집사님 생각엔 우리 남편과 어쨌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번에 이혼을 하던지 사과를 받던지.. 하나는 택하려구요'라고..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어투로, 같은 볼륨으로, 같은 내용으로 남편흉을 보는 통에 언제부턴가 나는 슬며시 피하고 있었다.
다시는 안볼 사람이라도, 이 여행이 끝나고 좋은 친구가 될지라도 할 말은 해야하는 것이 성질별난 내가 아닌가.
"순덕씨, 내가 보기엔 남편 잘못만은 아니라고 보는데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남편흉을 보고, 앞장서서 걷는 남편 등뒤에서 남편흉을 보는 거 문제 아닌가요? 내가 보기엔 순덕씨도 잘못이 크다고 봐요. 그리고 신앙인이라면 기도로 하나님께 내려놓고 매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람이 바꾸지 못해도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능치 못함이 없어요. 이혼을 하던지, 사과를 받던지는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남편만의 문제는 아니네요" ...
'집사님, 기도 무척이나 많이 했어요. 그래도 안되어서..'
'그래요? 기도 무척이나 많이 했어도 안변하면 아직도 그 기도가 모자란다는거예요. 하나님의 때가 될때까지 묵묵히 기도하세요. 사람들에게 흉을 볼 시간에 기도하세요."
여전히 남편에게선 문자가 오고(모두를 나무라고 욕을 하는 문자다) 그러다 다시 통화를 두어시간 하고.. 다시 내게 이야기를 하고 정답을 요구하지만 정답이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잠을 잘 시간을 놓친 나는 별난 부부를 향하여 속으로만 욕을 해대고 몸은 침대에서 딩굴거리며 잠을 찾느라 고생을 하는동안 제주도의 깊고 푸른 밤은 여전히 평화롭게 깊어만 간다.
-------------------------------------------------------------------------부치지 않은 엽서..
주현아!
누군가가 목이 아프도록 불러대었던 "제주도의 깊고 푸른 밤"은 정말 노래처럼
깊고, 푸르고 또한 넓기만 하다.
시간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채, 누군가 풍덩 달려드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맑은 밤하늘과 이쁜 돌들과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한잔의 술과, 한 모금의 노래와 다정한 담소를 나누는 행복한 밤이 지나고 있다.
떠나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쩌면 나를 기다리며 맞이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나를 받쳐주고 때문이 아닐지.
여름이 깊어가는 날, 우리 가족이 즐겁게 보낼 날들을 기다리며
09.06.11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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