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25주년...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남편과 이야기 했다.
"겨울이 춥고 귀찮지만 세현이가 1월에 휴가를 다녀가고, 이어서 구정을 보내고 나면 금새 새봄이겠지?
정말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이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다시 겨울이 오고.. 우리 인생에서 사계절을 몇번을 보내게 될까..
하긴 벌써 우리가 함께 맛본 사계절이 25번이 지났으니..".. 아무래도 우리도 늙어가나 보다. ㅉㅉ
결혼 25주년을 단한번도 무심히 지나지 않고 책을, 팔찌를, 목걸이를, 장갑을, 핸드백을... 선물한 남편이 올해는 수상쩍었다.
배드민턴 클럽 회원중에 금은방을 운영하는 분이 계신다. 지난여름부터 수군거리는 시간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어느날엔 100만원이면 멋진 목걸이를 할 수 있다며 싱글거린다.
결혼 25주년이면 은혼식인데 멋진 목걸이 하나 선물할께.. 라고 기어히 내뱉더니...
나날이 약화되는 경기침체는 우리가정만이 아니고,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어느새 세계만국에 불황이라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 가득하다.
몇년전, 처음으로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평내광고'를 시작하던 때, 6개월은 고용보험에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고, 6개월이 지난 어느날, 한번에 쌓인 청구서가 평범하던 우리가정을 당황하게 했다.
두 아이의 등록금, 재산세, 자동차세, 등등.. 세금이란 세금은 모두, 청구서란 청구서는 모두가 한꺼번에 날아들었던 그날, 지금까지 카드를 만들지도 않았던 우리는 난관에 봉착을 했고, 도대체 우리집에서 돈이 될 물건이 무엇인가를 골몰하게 생각한 순간, 레이저테크 10년을 기념하여 사장님이 해주신 1냥짜리 금팔찌가 떠올랐다.
금팔찌에 담긴 나의 10년생활은 어쩌면 우리가족의 모든 고통과 설움과 슬픔과 기쁨과 행복이 함께 담긴 것이기도 했다. 처분하는 마음에 미적거리는 마음이 가득했도 어쩐지 빼앗기는 서러움이 나를 잡았지만 당장의 청구서들이 나를 결단하게 했다.
금팔찌를 처분하고 그로 인하여 쌓인 청구서들이 말끔이 정리가 된 일이 남편에겐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남았으리라.
25주년이 다가오던 날, 남편에게 말을 했다.
"자기야. 절대로 목걸이나 반지나 그런거 사려고 하지마. 난 정말 관심도 없어"라고 말했다.
평소에 보석에 대한 내 마음이 시시하다는걸 알고 있던 남편이고 현재의 상황이 그리좋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남편도 부담을 덜었는듯 하다.
미리 예약을 한 구리타워 G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평소에 자주 지나던 길이었지만 레스토랑은 처음이다.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하는데 그럴듯 해보였다.
레스토랑에 도착하니 예약한 탓으로 창가를 향한 두 자리가 기다린다.
여전히 양은 적지만 가격은 착하지 않은 왕새우 안심스테이크를 주문하니 여직원이 축하한다며, 목소리가 이쁘셔서..라는 뻔한 멘트를 하며 와인 두잔을 서비스한다.
구리타워에서 보이는 야경이 정말 근사하다.
처음 앉은 자리는 아차산을 바라보는 자리였는데 의자가 조금씩 돌아가더니 서울시 방향이 되었다가, 구리시 방향이 되었다가, 남양주시 방향이 되었다가, 하남시 방향으로, 덕소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이름없는 가수가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여기저기 기념일을 맞이한 이들이, 보고픈 얼굴을 만난 이들이,
가족들이, 연인들이, 친구들이 마주보며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 가운데 우리도 25년간 살앗던 이야기들을 헤쳐가며 다시 다가올 날들을 펼쳐보기도 한다.
집으로들어서는 순간, 아침에 문자를 보냈던 세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멀리있어서 선물도 못하고 미안해요, 즐겁게 보냈나요? 보고싶고 사랑해요^^*"라고..
통화를 하면서 집에 들어서니 시험을 끝낸 주현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통화중인 내가
"선물은 형이 준비했겠지뭐. 전화와 문자 모두 고맙다"고...
주현이가 "선물은 무슨.."이라며 도무지 들고나올 생각을 않는다.
어려서부터 세현이와 함께 꽃이나 케익을 선물하던 녀석들인데 전혀 무심한 얼굴을 보니 서운해진다.
"감춘 선물 빨리내놔라"는 집요한 말에 "정말 선물이 필요해?"라며 가방을 뒤지더니 겨울잠바 두개를 내민다.
용돈이 늘 부족하고 돈이란 돈은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당겨서 쓰는 녀석이 주제를 모르고 손은 크다.
내일 당장 손을 벌릴지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기분이 좋다.
남편이 보내온 꽃 보다도, 멋진 곳에서 먹은 저녁식사보다도 더욱 기쁜건 왜일까.
내건 조금 크고, 남편건 조금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맞다, 겨울옷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며 헤벌쭉거리고
"자기야, 요즘은 이렇게 꽉 끼게 입어야 젊어보여"라고 치켜세운다.
50이 넘은 아빠가, 50이 넘어가는 엄마가, 아들이 사준 겨울잠바에 기절할듯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주현이가 오히려 더 좋아한다.
선물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느끼는 모양이다.
가정이란, 가족이란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달은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우리가정,
앞으로 더욱 더 사랑하며 세워주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는 귀한 가정이길 때마다 기도하리라.
역시,
결혼은 해야 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