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에 집에 온다는 세현이의 연락을 받고부터
11월은 또 하나의 기다림을 가진채, 야금야금 세월속으로 스미고 있었다.
29일 아침, 지난주와 바꾸어 쉬는 토요일 아침이라 넉넉한 마음으로 세현이를 마중가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좀체 말을 듣지 않는 커다란 몸뚱어리,
5시에 일어나 씻고 왔다갔다 하며 차마 깨우지도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거듭하는 신랑,
6시에 출발하면 정확하게 8시가 되면 세현이 부대앞에 도착함을 알기에 미적미적...
마음은 이미 달려가고 있는데 60kg가 넘는 몸무게, 50이 넘어가는 나이,
아침기온은 영하를 겨우 면하고, 날씨는 비가 추적추적거리고,
그리고 겨울로 들어서는 아침은 어둡기만 하고.... 에고고..
진정..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있다는...
두꺼운 돕바를 걸치고 나오니 신랑이 그렇게 춥지않은데 극성을 부린다는 눈총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만 타면 난 잘테니...라고 벼르며 세수만 하고 길을 나섰다.
남양주를 출발하는 길은 비가 조금씩 흩뿌리더니
네비가 친절히 '서울특별시에 진입하였습니다'를 외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겨울비를 바라보며 어두컴컴한 아침을 달리는데 친절한 네비가 다시 '경기도에 진입하였습니다'라고
소개를 하는데 밖은 기다린듯이 진눈깨비가 날린다,
주말이어서인지 차도 많고, 비가 내려서인지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미 두번 다녀온 길이라 이미 낯이 익은 평택시,
지난번 복귀할 때 눈물을 흘리던 곳에 차를 세우고 위병소 입구에서 세현이가 나올 길을 바라봤다.
넓고 넓은 기지안, 수많은 차가 다니는걸 보니 또다른 도시가 그곳에서 시간과 함께 섞여가고 있다.
힐끔거리고 들여다보니 신호등도 보이고 건널목도 보이고...
어느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우리와 같은 하늘을 이고,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걸 깨닫는다.
8시 34분,
닫힌 문안에서 모자를 쓰고 배낭을 둘러메고, 특유의 선한 웃음을 얼굴 가득히 머금은채로 세현이가 문을 밀고 있다.
처음 보듯이, 세상에 아들은 오로지 이것 밖에 없는듯이,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이름을 부르고 안아보며 차에 오른다. 세현일 바라보니 이 녀석이 또 눈물을 닦고 있다.
세현이가 흘리는 눈물의 양 만큼, 내게도 그만큼의 눈물이 비집고 새어나와 얼른 훔치고 만다.
길고 게으른 손이 조금 거칠어진 듯하고, 얼굴은 지난번 보다 좀 더 야윈듯 하다.
군대가 익숙해졌는지, 어설프지 않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구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엄마, 운전하다가 구리라는 저 이정표만 보면 기분이 어떤지 알어?"
" 알고말고, 네 기분이 얼마나 애절할지, 구리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쳐 달리고 싶은 네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어? 그냥 냅다 달려오지 그랬어?"
"그러면 안되지, 그냥 집 생각이 나지뭐.."란다.
애가 타는 그리움을 낸들 모를까,
평택이란 말만 들어도 달려가고픈 내 마음을 네가 알 수 있을까.
군인만 보아도 마음이 두근거리고 계급장을 살피는 내 마음을 네가 어찌 알 수 있을까.
군복입은 청년들만 보면 달려가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싶은 내 마음을 네가 알까..
네가 다니던 학교, 네가 졸업한 학교, 네 또래를 보기만 해도 내 마음이 미어지는 그리움으로 아들을 보고파 하는 마음을 네가 알까... 말이다.
'구리'를 보며 엄마를 생각하고 집을 그리워하는 네 마음을 내가 다 알지 못하듯이..
그렇게 그렇게 삭히며 재우며 포기하며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닫기엔 세현인 아직도 어린지도 모르겠다.
집에오니 주현이가 부시시 동생을 맞이한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던 세현이, 세상에서 엄마 김치찌개가 가장 맛있다는 세현이를 위하여 돼지갈비를 넣고 묵은지를 넣고 두어시간을 푹푹 고았다.
오징어와 해물을 넣고 해물파전을 만들어 오랫만에 네식구가 앉아서 점심을 먹고나니 설겆이가 잔칫집 설겆이다.
"엄마, 내가 도와드릴것 없어?" 세현이가 묻는다.
"없어 없어, 가만히 앉아있어"라는 말을 마치는데 어디선가 똑같은 소리가 들린다.
"엄마, 내가 도와드릴것 없어?"...
아니 이건 무슨 소리야??
"어딨어? 있지, 있고말고, 빨리와서 설겆이 도와줘"라고 찾으니
주현이가 화장실 문을 빠꼼하게 열고 실실 웃는다.
"아무래도 도와줄게 없을 것 같아서."라며 이죽거리는 녀석이 밉지만은 않다.
오후가 되니 세현이가 친구만나러 가고 주현인 파머를 한단다.
주현이를 데리고 집사님네 가서 3시간에 걸쳐 파머를 하고..
저녁이 되니 아들들은 온데간데 없고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신랑과 내가 텅빈 들녁을 바라보듯이 아들들이 드나들던 방과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를 줍느라... 치우느라... 뒤설겆이 하느라..
'나쁜 놈들..'
중얼중얼...
'자식 다 필요없다니까..'
다시 중얼중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