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엄마를 부탁해

여디디아 2008. 11. 19. 16:24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부탁해

 

지은이: 신 경 숙    출판사: 창  비

 

여름을 마무리하고, 가을여행 제대로 하지 못한 날들을 아쉬워하며, 아직은 가을이라고,

남국의 햇살이 아직은 더 남아 있어야 한다고, 창문으로 스미는 눈부신 햇살이 아직은 가을햇살이라고 고집하던 날, 교보문고에서 예약판매와 함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쯤 받아볼지도 모르는 책을, 어떤 내용이 그려질지도 모르는 책을, 오로지 신경숙이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주문하고 결제를 하는 동안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여기저기서 김장이야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늦가을의 나뭇잎들이 수북히 쌓인 길을 걸으며 '머잖아 겨울이려니..' 중얼거리며 웅크린 모습으로 걷던 날,

빨간표지 위에, 저물어가는 태양속에서 기도하는 여인들의 숙연한 모습이 그려진 책이 내 손안으로 왔다.

책을 펼치기 전에 이미 나는 예감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며,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 놓은채 핑핑거리며 코를 얼마나 풀어야 할지, 아침에 정성껏 그린 화장들이 검은색으로 번지리란 것까지..

 

2008. 가을 신경숙이란 싸인이 책을 펼치니 이쁘게 쓰여져 있다.  이것이 예약판매의 효과이기도 하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이기도 할 것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리스트-

엄마이야기에 당연하게 떠오르는 사랑, 그리고 미안함과 죄책감, 알면서도 지나치는 무심함까지.

이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책의 맨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아버지의 생신을 맞이하여 서울에 있는 작은 아들네 집을 찾아오시는 엄마와 아버지,

평소에도 걸음이 빠르신 아버지와 일평생 걸음이 늦은 엄마가, 아버지 생신을 맞아 J읍으로 모여들 자식들을 생각하며 서울로 올라오시던 날, 그날따라 자식들은 모두 제각각의 약속이 있었고 그런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혼자서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며 지하철 서울역에서 지하철에 오른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서울역은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곳저곳으로 떠나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가만히 있어도 떠밀린다. 

떠밀리는 사람들 틈에서 겨우 지하철을 타고가던 아버지가 어느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본 순간,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할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급히 되돌아온 서울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내가 없어짐을 깨달은 아버지의 절망감과 자식들의 절망감을 어찌 말로 할 수가 있을까.

엄마를 찾기위해 자식들이 함께 모여 전단지를 만들고, 인터넷에 엄마를 찾아달라는 호소문을 낸다.

 

1장   아무도 모른다

엄마에 대한 큰딸의 비통한 마음과 엄마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며,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마음 아파하며 때늦은 후회와 뒤늦은 깨달음으로 엄마를 그리워한다.

큰딸은 작가인 신경숙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신경숙의 작품에 등장하는 엄마의 모습과, 어린시절의 집과 형제들의 모습을 기억하면 틀림없이 신경숙 스스로 엄마에 대한 기억과 사랑임을 알 수가 있다.

어느날 계획없이 엄마에게 갔을 때, 헛간에 누워서 의식을 잃고계신 엄마의 모습과 그때 병원으로 모시지 못한 죄책감까지... 한 글자도 예외없이 공감이 되는 나의 이야기임을 어찌할까.

 

2장  미안하다, 형철아  

  엄마는 자식에 대해서 무엇이 그리도 미안할까.

잘 먹이지 못해서, 잘 가르치지 못해서, 잘 입히지 못해서...

부모라는 자리는 자식들을 향하여 주어도 주어도 미안한 그런 자리인가 보다.

큰아들 형철이 초중고를 일등으로 졸업하고도 대학에 떨어진 후, 엄마는 아들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았다.

고등학교 졸업증명서가 있어야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소식에  파란슬리퍼를 신은채로 기차를 타고 아들이 묵고있는 동사무소로 달려오신 엄마, 잠을 잘 수 있음에 고마워  이른아침에 동사무소 마당을 깨끗하게 빗질해 놓으신 엄마, 큰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빌고 바라던 엄마,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버릴 수 있고 여자로서의 모든 삶도 넉넉히 포기할 수 있었던 엄마,

늘 미안하다던 엄마의 모습을 큰아들 형철의 입장에서 바라본 내용이다.

 

3장  나, 왔네

평생을 그 자리에 있으려니 했던 아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려와 집에 앉혔을 때도, 바람처럼 휘휘 세상을 떠돌다 계절이 바뀌고 다시 바뀌어 들어왔어도 아랫목에 당신의 밥을 묻어놓던 아내,

가장이 집에 없어도 아이들은 커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집안, 식물이든 동물이든 아내의 손길이 닿으면 금세 푸르러지고 활기차게 살아나던 집안에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아내의 빈 자리에서 남편은 소리친다.

"나, 왔네."

안방에서, 큰딸이 두고간 책들 사이에서, 헛간에서, 옆집 아이들이 배를 채우는 부엌에서, 

"인제 오셨오이."라며 함박웃음을 웃어줄 아내가 없는 집안에서 남편의 존재가 어떠했는지를 깨달으며 뒤늦은 후회와 사랑으로 목놓아 우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졌다.

 

4장  또다른 여인  

엄마인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은 투명인간의 모습으로 말이다.

서울역에서 길을 잃은 나는 이미 죽었음에도 쉽게 이 세상을 하직하지 못하고 작은 딸의 집을 들여다보며 작은 딸의 모습에 마음을 끓인다. 세 아이의 엄마로서 쉴틈없이 움직이는 착하고 똑똑한 딸이 아이들틈에서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뒤치다꺼리에 허둥대는 모습을 보며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시어머니같이 무섭던 시누이에게, 일찍 세상을 떠난 시동생을 기억하며 주위를 빙빙 도는 모습이 가슴아프다.

마음에 두었던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로 인하여 든든했던 일, 그로 인하여 일어설 수 있었던 비밀함을 펴내는 것을 보고는 어쩌면 다행이었다는 안도를 느끼게도 한다.

 

에필로그  장미 묵주 

엄마가 여전했으면 지금쯤 결혼을 하였을 큰딸이 그와함께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잃은지 구개월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엄마를 찾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로마에서 큰딸은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엄마에게 줄 장미 묵주를 준비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가면 장미 묵주를 사다달라'던 엄마의 말이 생각난건 바티칸 시국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듣는 순간이다.

숨을 거둔 아들을 감싸안은 피에타상을 보며 큰딸은 다시금 엄마를 떠올린다.

피에타상이 곧 세상의, 나의 엄마의 모습임을 깨달으며 누구에겐지 '엄마를 부탁해'라고 외친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엄마에 대해서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함부로 말한 것, 소리질러 마음을 다치게 한 것, 고집을 피워 눈물을 흘리게 한 것, 말 한마디로 가슴에 대못을 내리친 것.. 그러면서도 돌아서지 못하는 마지막의 죄...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요란하지 않게 눈물을 흘리며 팔순을 넘어 정신이 가물해지는 엄마에게 '그게 아니라'며 소리지르는 나의 모습이 보여진다.

그러면서 하는 일이란 겨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도 무사하신지,  식사는 하셨는지..확인하는 것 뿐이다.

나는 엄마처럼 살아갈 수 없고,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근심이 가득한 딸일 뿐이라는 사실이 힘겹다.

 

역시 신경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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