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황 석 영 지음
문학동네
유년의 때, 여름의 한낮은 길고도 길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지런한 엄마와 아버진 이른아침을, 시커먼 보리쌀속에 흰쌀이 보일듯 말듯한 밥을, 가지며 비듬나물, 풋고추 송송 썰어놓은 된장찌개를 반찬으로 꿀맛인듯이 드시고 밭으로 혹은 논으로 향하셨다.
뙤약볕 아래서 하루종일 일을 하시고 저녁으스름이 내리는 시간이면 엄마의 머릿수건은 풀이 죽어있고, 아버지의 낡은 런닝은 땀에 절은채로, 아버지의 키를 넘으며 우쭐우쭐 덩겅거리는 지게를 지고, 가난한 엄마의 굶주린 뱃속보다 훨씬 큰 다래끼를 옆에 낀채로 고단한 발걸음으로 어린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다.
그런 부모님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두개의 방과 반짝거리는 대청마루를 청소하고 두 여동생을 보살피며 긴 여름해가 설핏이 서산으로 넘어가길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초등학교 상급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은 부모님을 따라서 김을 매고 소를 먹이고 제법 어른의 흉내를 내며 들일을 거들곤 했지만 어릴적부터 병약했던 나는, 또한 넉넉하지 않은 논밭은 굳이 어린 나의 손이 필요하지 않았음으로
친구들보다는 편안한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 어느날이었을까,
고단한 엄마의 일손을 거들고 싶어 부엌 가득히 물을 길어다 놓고, 엄마의 흉내를 내며 도라지를 무쳐놓기도 하고 어설픈 밥을 지어놓기도 하여 엄마를 기쁘게 해드린 기억이 난다.
저녁을 먹고나면 하늘에 떠있는 별은 어찌나 총총하고 영롱했던지.
하늘에 유리조각이 깨트려졌다고 동생에게 말을 하곤 했다.
그때 총총히 빛나던 별중에 개밥바라기별이 초롱한 빛으로 빛났으리라.
여전히 가난한 저녁을 먹고 엄마는 고된 몸을 추스리며 설겆이를 끝낼때, 헛간옆에 매어놓은 개가 컹컹 짖으며 밥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할 때, 그때 하늘위에서 개밥바라기별이 모습을 나타냈으리라.
이 책은 황석영님의 자전적 소설이다.
서두에 월남으로 파병가기전, 하룻밤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주인공 준은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간 준은 홀로계신 엄마를 위로하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짧은 날을 뒤돌아보며 옛날을 회상한다.
사춘기로부터 시작한 남자들의 본능,
젊음이 가져다주는 특권, 자유, 패기, 방종, 방황과 방랑..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그것만이 진실이라 믿으며 부모님의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고 행동하던 오만함...
계획표에 짜여진 듯한 학교생활에 일탈을 꿈꾸며 가출을 하고, 산속에서 생활을 하기도 하고 공사판을 떠돌며 노동자가 되어보기도 함으로 오로지 자신만이 최고이며 전부이며 삶의 진리라 믿었던 날들..
앓으며 자라고, 자라면서 아파하는 어릿광대같은 젊음의 날들,
친구는 또하나의 나의 모습이며 나의 분신이라 여기는 푸릇푸릇한 남학생의 모습들..
그들의 젊은 방황과 기웃거림은 결국 세월이 자리를 가르쳐 주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스스로 찾아감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조건 허비하는 젊음이 아니고 읽으며 느끼며 나누는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또하나의 즐거움이지만 현실의 내 아들들이 그런 생활을 한다면 나는 지레 미쳐버릴 것이다.
황석영님의 자전적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남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겠고, 시대적인 배경이 또한 그들을 받아들였으리라 여겨지기도 한다.
이제 저녁식사를 마친 우리는 컹컹 짖으며 밥을 기다리는 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늘 어디쯤에서 개밥바라기별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바리데기'를 읽은 후, 다시 만나게 된 '개밥바라기별'이 반갑다.
젊다는건,
어찌되었건 축복임에 틀림없다.
*개밥바라기별..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마칠즈음, 개가 밥을 달라고 보채는 시간에 뜨는 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