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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

여디디아 2008. 8.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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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지나고 나면 더위가 삭혀지려나..기대를 하고 잠을 자고나면, 여봐란듯이 더위는 하룻밤만치 더 무겁게 다가드는 날이다. 무더위를 피하느라 바다를 찾고 계곡을 찾기도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렇게 더울땐 회사가 최고라는 사실을 나이 오십인 이제서야 깨닫는다. ㅋ

세현이의 휴가가 9월 첫주간이라고 하길래 여름휴가는 이미 저만치 밀어놓고 있자니 어딘가 허전하고 아쉬운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나보다.

며칠전 신문에서 '경상북도 작가들이 경북으로 문학투어'를 한다는 기사를 읽고는 눈이 번쩍 띄었다.

김주영, 정호승, 안도현, 문태준, 김명인, 성석제...

이미 김주영, 정호승, 안도현시인과는 한번씩 여행을 했었지만 성석제씨까지 함께 한다니 반갑지 않을수가 없다. 기회되는대로 참가하리라...마음먹는다.

첫번째 코스가 청도 운문사이며 정호승시인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청도 운문사는 정호승시인이 청년시절에 문학에 대한 공부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주현이에게 동행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한다.

 

여행을 위해서 네비게이션을 샀다.

이른아침부터 장충동길을 물어물어 가기란 결코 쉽지 않을거란 생각에..

네비를 장착하고도 파라다이스티앤엘을 찾느라 고생을 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나는 목적지 주차장까지 희한한 네비가 안내해 주리라 믿고 건물한번 쳐다보지 않은채 주위를 다섯번이나 돌았다는 한심한 이야기다. 간밤에 친구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 주현인 죽은듯이 잠에 취해 있었고, 결국 주현이가 잠에서 깨어나 안내를 하는 바람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세버스 3대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으니.. 정말 대책없는 인물이다.ㅉㅉ

 

버스에 오르니 참석자들이 부지런을 떨어 자리를 잡았다. 

주현이와 함께 이름표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자마자 주현인  잠속으로 잠수하듯이 미끄러진다.

혼자 창밖을 내다보며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일상들을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란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

16년동안 함께 근무를 하며 지낸왔지만 여전히 생소한 면이 나를 경악케 하듯이 나또한 그들에게 그럴거란 생각,

교회안에서의 거룩한 사람들이 결코 속사람까지 거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찢어지는 아픔과 현실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니 어느새 버스가  천안휴게소에 들어선다.

화장실을 들러 커피 한잔을 마시고 차에 오르니 주현인 아직도 한밤중이다.

 

다시 출발한 버스안은 김밥을 먹는 소리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소리들이 활기를 띄운다.

갑자기 외로워지듯 밀려드는 심심함..

정호승시인의 시를 읽고 청도에 관한 책자를 읽고있으니 주현이가 부시시 깨어나 미안한 웃음을 건네온다.

두런거리는 소리들에 섞이어 모처럼 아들과의 대화가 이어진다.

며칠전 다녀온 일본여행이야기, 여친과 다투어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라는 이야기, 어릴적부터 세현이에게 해준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는 내가 먼저 놀란다.

나 또한 편식이 심한 주현이 위주의 음식만 만들었던 일,

세현이에게 보낼 과자를 사려고 슈퍼에 갔더니 도대체 세현이가 좋아한 과자가 무엇인지 모르겠던 일..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이유로 특별히 챙기지 않았던 일들이 미안하다는 이야길 했더니 주현이가 앞으론 세현이를 많이 챙겨주라고 형다운 말을 한다.

 

4시간을 달린 버스가 청도에 도착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비빔밥을 먹고 운문사로 향했다. 청도군청에서 나오신 자원봉사자 김성태님이 청도에 대한 설명을 구수하고 익숙한 경상도 억양과 사투리로 풀어놓는다.

운문사에 도착하니 참으로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고즈녁한 운문사위로 팔월의 뙤약볕이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지만, 울울창창한 소나무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흔들어줌으로 시원하고 경쾌한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우리나라 최고의 '비구니 승가대학'이라고 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운문사는 고요한 침묵속에 잠긴듯 하다.

수예, 꽃꽂이, 컴퓨터, .. 등등 여러가지 과목을 배우고 학문에 전념하며 불교에 대한  정진과 수행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 240명이라고 한다.

대구 동학사 말사라고 하는데 범위는 오히려 동학사보다 크다고 한다.

깨끗하게 정돈된 사찰, 구석구석 손길이 닿은 모습들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한층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극락교란 다리앞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란 글씨가 써져 있다.

저 다리를 건너면 극락으로 가는 것일까.

 

운문사에서 문산스님의 강연이 있었다.

'성불하세요'란 말은 '부처님처럼 사세요'란 뜻이며 곧 '행복하세요'란 뜻이라고 한다.

얼마나 강연을 훌륭하게 하는지 주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저 말을 들으니 불교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어진다'..고.

강연을 들으니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다,

순간순간 생각하는 것이 죄이며 마음에 품는 것이 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하게 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며 노력해야 한다.. 이런 요지였다.

 

강연을 들으니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죄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가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순간순간의 모든 죄악까지도 용서하시며 대신 짊어지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에서 해방되어 의인의 길에 들어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얼마나 자유한가 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강연하시는 스님도 그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정호승시인의 간단한 인사를 듣고 주현이와 먼저 운문사를 나와 주변을 돌아보았다.

굵은 소나무가 웅장하고 오솔길이 나있는 길을 걸어보고픈 내 마음과 같이 주현이도 그런가 보다. 

'엄마, 우리 저 길을 걸어보자'는 제안을 먼저 한다.

둘이서 오솔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풍경속으로 빠진다. 

 

운문사를 떠난 버스는 '청담갤러리'로 향한다.

정호승시인이 직접 싯귀를 쓴 도자기를 빗재 김용문선생이 빚으셨다고 한다.

도자기값이 만만치 않아서 사는것을 포기하고 2층으로 올라가 다리쉼을 하며 오미자차를 마셨다. 각양각색의 도자기들이 앙증스럽게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청담갤러리를 돌아본 후, 버스는 서울로 올랐다.

버스안에서 정호승시인의 동영상을 보며 문학강연을 듣고 시 낭송회를 가졌다.

시를 낭독하고 싶은데 주현이가 옷깃을 잡아끄는 바람에 주저앉고 말았다.

문학강연을 듣고 있으니 즐겁기도 하지만 얻어지는 것이 참 많다.

그래서 사람은 끝까지 배워야 하나 보다.  

 

장충동 파라다이스에 도착하니 10시 10분,

떠듬떠듬 비가 내리고, 어둠이 차곡히 쌓이기 시작하고, 어설픈 밤길운전이 시작된다.

네비가 가르쳐주는데로 오는 길, 옆에서 보는 주현이가 기어코 한마디 한다.

"36km을 1시간이나 운전한다는 것도 신기한 일, 엄마는 평내 호평만 다니면서 운전하셔"..

 

5년만에 아들과 함께한 여행,

즐겁고 행복하였음을.. 

 

  

 

**운문사에는 비구니(여승)들만 기거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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