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현실을 실감할 때가 있다. 최근들어 부쩍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이 보내준 효도여행', 이런저런 모임에서 다녀오는 여행들.. 아이들이 어리면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여행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나또한 중년의 아줌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유행처럼 번지는 외국여행, 외국여행을 다녀오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아니면 살림이 몹시도 어려워 끼니조차 겨우 연명하는 사람들로 바라보는 한심한 눈들도 있다.
결혼 20년이 되던해, 남편과 함께 제주도에 다녀온 나를두고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ㅎㅎ
나는 참 바보같다는걸 인정해야겠다.
혈연이나 지연이 아니면 그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는가 하면 절대로 갈 수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어린날의 추억은 늘 그리움으로만 내 속에 있고 그 땅이 여전히 살아 숨쉬며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새들이 우짖고 여전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어울리며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며, 누군가는 죽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남으로 기쁨을 나누고 희망을 바라봄을 또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마,
처음으로 두마란 이름을 들었을 때, 숨이 막히는줄 알았다.
고모님들이 두마를 떠나신 순간부터 이미 내 기억엔 두마란 지명까지 지우개로 지운듯이 지워져 있었으니 말이다.
두마산장이란 블러그를 만났을 때의 기쁨과 환희는 감격이었으며 감동이었고 기필코 다시 찾아보리란 비장한 각오까지 가지게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유난히 연휴가 많았던 봄,
기다린듯이 교회행사는 나를 붙들어 매었고 아쉬움만 가득한채 뒤로 미루고만 있었던 두마,
현충일이 있었고 토요일이 행운처럼 놓인 황금의 연휴, 쉴토가 아니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16년간 몸담은 회사에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하루를 허락받은 그 순간부터 나는 훨훨한 새가 되어 두마로 향하고 있었다.
목요일 저녁, 퇴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미리 준비한 짐들을 챙겨 대전으로 출발했다. 주현이 자취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반찬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해주며 30년전쯤 엄마가 내게 하셨던 모습을 생각하며 이제 나도 엄마구나.. 세월이 이렇게 나를 데려가는구나..싶어진다. 내일아침 예고없이 찾아간 셋째딸을 엄마는 어떤 모습으로 반기실까.. 이또한 즐거운 상상이다.
현충일,
이른아침에 출발한 길은 아침식사 시간이 조금지나서 엄마앞에 나를 서게 한다. 기절할듯이 반가워하시는 엄마, 꿈이냐 생시이냐를 물으시며 눈을 꿈벅거리는 엄마를 만나니 마음이 쓸쓸하다.
언제까지 어렇게 홀로 고향을 지키며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계실 수 있을까.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방에 들어서지도 않고 부엌을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길게길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엄마, 억지로라도 밥 드시고 귀찮아도 한걸음씩 다니셔야 건강하다"고.
입맛이 없어서 아침을 드시지 않으셨다는 말씀에 마음이 저려 급히 쌀을 씻어 안치고 준비해간 열무김치와 새우볶음과 마늘과 고추와 멸치를 섞어서 볶은 반찬, 지난번 맛이 있었다는 말씀에 급히 담근 마늘쫑을 다시 버무려 무친 마늘쫑 무침과 오이지를 담아 밥상을 차렸지만 이따가 드시겠다는 고집에 다시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믿기지 않아 손을 만지고 다시 만지며 얼굴을 쓸어보는 엄마를 남겨두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엄마곁에서 하루를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생각일 뿐, 두마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은 이제 집착으로 변한듯 싶다.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차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고 손사레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마음에 담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