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두마 2

여디디아 2008. 6. 10. 11:37

 

 낚시를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남편이 떡밥을 주무르고 낚싯대를 가늠하며 드리우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혼자 길을 나섰다.

마치 내가 직접 살았던 고향처럼 길들이 훤하다.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며 어디로 끝이나는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양지마을,

막내고모가 사셨던 동네, 길을 따라 올라가니 집들이 예전처럼 많지가 않다. 고모가 사셨던 집은 아직도 누군가가 밥을 뜸들이며 정성들여 반찬을 만들고 마당엔 발자욱이 들락거린다.

안방이 있던 집은 개조를 하였고 사랑채는 그대로이며 담뱃굴은 반이상이 허물어졌다. 밑둥만 덩그랗게 남아서 그곳이 담뱃굴이었음을 말해주는듯 하다. 고모네라는 생각에 사진을 찍는 데 아이들이 신기한 듯이 뛰어온다.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 여기엔 왜 왔느냐며, 무슨 일이냐며 묻는 아이들에게 어릴적 친구들이 살았고 고모네가 계셨던 곳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델이 되어준다. 돌아서는 길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으니 안나간다고 한다.

이번주일에 꼭 교회에 가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아마 지난주일엔 꼬마성도 세명이 두마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했으리라..믿고싶다.

 

양지마을을 지나 대태로 향했다.

돌다리를 건너던 곳에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놓였다. 

대태.

몇십년전에 있었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나를 들뜨게 하고 울컥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아지매, 이 더운데 어딜가는교?'라는 할머니 말씀에 그냥 구경한다고 말씀드리고 혼자 보현에서 대태로 들어서는 길목까지 걸었다.

대태입구에 있는 성황당, 색색의 천이 둘러쳐져 있던 나무에 천은 찾아볼 수가 없고 누군가 정성껏 돌을 쌓아놓은 모습은 여전하다.   무서워서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어린날을 기억하며 가까이 다가가 사진도 찍어본다. 틈틈이 쌓인 돌탑들, 돌을 쌓은 간절한 마음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빌어본다.

 

대태입구를 들어서기전에 있는 논, 논 사이로 흐르던 시냇물, 그리고 물봉선화가 그리워져 산모퉁이를 넘어섰다.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갔다가는 후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었다. 산모퉁이를 돌아보니 누군가 집을 지어놓고 농장이라는 글씨를 써놓았고 커다란 개가 낯선 나를 두고 짖기 시작한다.

물봉선화가 피었던 곳을 더듬었지만 논에는 모내기 대신 이름모를 나무와 풀들이 웃자라고 있다. 다시 산모퉁이를 돌면 여전히 낯익은 곳이 보일테지만 그쯤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대태를 지나 학교마을로 들어서는데 온통 오가피 나무와 사과나무들이다. 농사를 짓지 않고 오가피와 사과를 수확하여 수입원이 늘었는데 지금은 중국산 오가피 때문에 오히려 캐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과나무 사이로 감자꽃이 너울댄다. 다음달이면 알이 굵고 맛이 좋은 감자가 특유의 맛으로 우리 입맛을  감동시키리라.

학교마을에 들어서서 정자를 보며 어린날의 그림을 찾아본다.

늙은 정자나무는 무심한 듯이 바람을 만들고 나를 위해 그림자 한조각을 내놓는다.

 

피래미 한마리도 없으니 들어가자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둘이서 산장으로 돌아왔다.  조금 피로했던지 달콤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 준비해온 엽서를 두서없이 썼다. 함께 오고픈 그리운 사람들이며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데 고마운 분들이며 사랑하는 이들이다.

 

저녁식사는 염소불고기, 소불고기처럼 연하고 부드럽고 맛이 달다. 동생을 위하여 아껴둔 고기라며 선뜻 대접하는 안주인의 넉넉함이 더욱 맛잇는 식사를 제공한다.

식사후 주인부부와 우리부부가 함께 앉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가피를 넣어서 끓인 식혜는 한 그릇으로 부족해 한그릇씩 더 마시고(덕분에 밤에 화장실을 두번씩이나 갔다) 산장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쁜중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부인, 한달에 몇번씩 자원봉사로 나가 손발을 걷어부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마음, 동네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거듦으로 두마사람이 되어버린 아저씨, 5월에 군대간 하나밖에 없는 아들, 병이 깊어 여기저기를 찾다가 결국 두마에 정착하고 의사들이 놀랄만치 건강을 되찾은 아저씨의 이야기, 고추, 배추 등 채소를 재배하는데 농약을 쓰지 않음으로 상품가치가 떨어지지만 우리몸을 지키기엔 그럴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 오가피와 두충나무를 심었지만 이젠 중국산이 침범하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않음으로 다시 캐낼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이야기,

깊고 깊은 산골에서도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때문이 아닐까 싶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마의 밤이 이미 깊어간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별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주인아저씨의 말씀에 두마산장에서 가장 멋잇는 것은

첫째, 보름밤의 달,

둘째, 그믐날 밤의 별,

셋째, 눈오는 모습과 비가 내리는 모습이란다.

밝은 달도 보이질 않고 깨진 유리알 같은 별도 보이질 않고 하얀 눈이나 비가 오지 않지만 천혜의 땅인 이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서늘한 바람을 마주함으로 이미 충일한 기쁨이 내 마음에 있다.

 

작은 방에서 멍석을 깔고 메밀베개를 베고 신혼여행을 온 것처럼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느새 깊고 깊은 잠속으로 빠졌다.

 

고로쇠수액으로 담은 된장찌개로 아침을 거뜬하게 먹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주인아저씨께서 곰취나물을 뜯으러 가자고 하신다. 난생 처음으로 나물을 뜯는 남편은 흔한 곰취나물을 두고서 칡 이파리를 나물이라 뜯는다. 나 참...

한가득 담은 나물을 들고, 주인아줌마가 담아준 고추장 항아리를 싣고, 가는 길에 드시라며 오가피 엑기스와 배즙까지 받아들고 있는데 어느새 치커리까지 뜯어다 주신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을 뒤로하고 다시 오겠다는 희미한 약속을 남기고 정이 가득한 산장부부를 남기고 돌아서는 길, 언제 다시올지 모르는 두마를 마음속에 담아두기 위하여  나는 어느새 달력속에 들어있는  빨간색의 숫자를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천국을 거닐다 오는 기분, 

천혜의 땅에서 선택받은 사람처럼 호사스럽게 뒹굴었던 마음,

이것으로 나는 내앞에 놓여진 삶을 살아내는 힘을 얻었음을 안다.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새로운 내가 내 속으로 들어온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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