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두마 1

여디디아 2008. 6. 10. 10:21

아쉬워하는 엄마를 남겨둔채 다시 출발한 마티즈는 보현산 천문대로 향했다.  보현에서 두마로 가는 길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이다. 옛날에 자박자박 걸어가던 그 길이 지금도 선하다.

천문대에서 두마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기에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길을 올랐다. 천문대 주차장에 닿을동안 두마로 가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천문대를 눈으로 구경하며 다시 내려오는 길에 두마로 가는길 표지앞에 커다란 차 한대가 보현산 호랑이처럼 가로막고 있음을 보고야 길을 놓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천문대에서 두마로 가는 길,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은 마치 천국의 어느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 같다. 언젠가 꿈속에서 걸었던 길이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직접 이 아름다운 산길을 타박타박 걸어본 것도 같은 기분이다.

낯익은 나무와 풀들, 낯익은 돌들, 낯익은 계곡의 맑은 물..

얼마나 보고싶고 그리워했던 내 사랑의 대상들인가!!

 

산길을 내려오니 드디어 두마의 마을이 시작된다.

큰고모가 사셨던 동네는 전혀 알아볼 수조차 없을만치 개량된 집들과 없어진 나무, 흙으로 세워졌던 다리도 없고 나무로 엮어졌던 다리도 없다. 다른 동네인가 싶기도 하고 한켠 쓸쓸한 마음이 든다.

학교마을에 도착하니 예정된 수순처럼 이미 학교는 폐교가 된지 오래이며 운동장에 텐트 몇동이 쳐져있는걸 보니 누군가 여행을 온 듯하다.  풀이 자욱하고 쓸쓸한 학교뒤로 두마교회의 십자가가 우뚝하다.

작고 볼품없었지만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앉아 성령에 충만하여 예배드렸던 곳이다. 보현교회보다 어른의 숫자는 많았었고 어린마음에도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했던 곳이기도 하다.

학교는 폐교가 되어도 교회는 더욱 새롭고 든든하게 세워진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두마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갔으면 싶은 간절함을 가져본다.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곰방대를 두드리기도 하고, 아이들은 나무에 오르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던 커다란 정자나무,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울울창창하게 자라고 있다. 반갑다.

나무아래서 여가를 즐기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건 농번기가 이유일 수도 있고 이곳역시 젊은이들이 도회지로 떠난 이유가 크리라..생각해본다.

정자나무를 지나  무순이와 무순이 친구들과 멱을 감았던 곳에 작은 다리가 놓였고 개울역시 무심하게 물을 흘리고 있다. 검정팬티를 입고 남자와 여자아이들이 함께 멱을 감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두마산장'이라는 나무간판이 보인다.

 

산장입구로 들어서니 역시 눈에 익은 곳이다.

어릴적 소풍을 왔던 그곳, 윗마을에 사시는 큰고모가 사이다를 사서 우리에게 건네시던 곳, 흰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가난한 고무신을 신고 친정 질녀들이 소풍 온것을 아시고 몇병의 사이다를 사오셨던 곳, 그때 고모또한 얼마나 곤고한 삶이었을까..

한눈에 두마의 온 동네가 들어오는 그곳에 '두마산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작은 연못과 반질거리는 장독대,  촘촘히 심어진 나무와 상추와 치커리, 파..등의 채소가 자라기도 하고 잘생긴 강아지가 산장을 지키며 꼬리를 흔들며 손님을 반긴다. 

손님들이 쉴 수 있는 작은 집, 방안을 들여다보니 신선놀음이 따로없다. 두툼한 멍석이 깔려있어 배기면 어쩌나 했는데 전혀 배기지 않고 편안하다. 메밀을 넣은 자그마한 베개는 앙증맞다 못해 귀엽기까지 하다.

황토로 만든 집, 벽에는 창호지를 벽지로 이용해 황토의 깊은 맛을 그대로 살려주고 있다.

신발을 벗어놓았는데 강아지가 시시탐탐 노린다고 높은곳에 올려 놓으란다. 강아지가 문앞에서 아른아른거린다.

 

반갑게 맞으시는 산장부부, 남편분은 인상이 선하시고  아내분은 적극적인 모습이다. 블러그를 통해 인사를 했었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으니 왠일인가.

먼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며 잘 익은 닭백숙을 내놓으신다.

닭 다리가 개 다리만큼 크다. 오가피와 갖가지 약재를 넣고 끓인 백숙은 맛이 일품이다. 닭고기를 쌈으로 싸서 드시라며 함께 내놓으신 상추와 치커리 그리고 곰취나물.. 오가피순을 장아찌로 담으셔서 함께 내놓으시는데 그 맛 또한 쥑인다.

아무리 먹어도 둘이서 닭 한마리를 다 먹을 수는 없다. 백숙에 이어 닭죽이 나왔다. 약재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맛이 쌉싸름하며 뒷맛이 개운하다. 이미 포만감을 느끼는데 입과 손이 멈추질 않으니..

 

식사를 하고 일단 한숨 주무시라는 안주인의 배려에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나는 노란평상에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신발을 물어가는 강아지가 내 주위를 맴돌고 책을 읽는 내게 안주인이 다가와 포근한 이불을 덮어준다. 시간이 지나니 썰렁하다.

미리알고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에 정이 담뿍 묻었다.

 

한잠을 청한 남편이 낚싯터를 찾는다. 산장에서 마주 보이는 연못에 둘이서 걸어가며 두마를 이야기한다. 연못 역시 어릴적에 왔던 곳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못이라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했던 기억인데 지금은 많이 작아진 느낌이다.

남편이 낚시를 하는동안 난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린 날의 내 기억을 찾아서 동네 곳곳을 돌아보며 내게 향수를 일으켰던 그곳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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