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두마(기억)

여디디아 2008. 6. 5. 15:34

고모...

 

 

'두마'       

산이 깊고 골이 깊은 곳,

하늘아래 첫동네라 불리며 별이 손으로 만져지는 그곳,

아마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아끼셨던 분은 두마에 살고계셨던 둘째 고모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버지 누나중 큰 누나는 군위에 사셨기 때문에 친정에 자주 오실 수 없었지만 두마에 사신 작은 누님은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때는 물론 크고 작은 대소사 외에도 자주 우리집에 오셨었다.

가난한 친정에 남동생이 조카와 질녀들을 키우며 살고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동생을 애틋하게 생각하신 고모는 부모같은 심정이었으리라 믿어진다.

고모가 오시면 유난히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방학을 하는 날이면 방학식을 마치자마자 언니와 함께 두마로 향했다.

학기중에도 아버지 심부름으로 언니와 함께 몇번씩 다니던 길이지만 방학을 맞아 고모네 놀러갈 때는 얼마나 신바람이 났던지.

자상하고 착하기만 하던 오빠들, 끼니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과 여러가지 찬으로 우리를 대접하던 갑순이 언니, 반가우면서 늘 투닥거리며 싸움을 하던 무순언니..언니지만 같은 학년이었다.

무순이랑 함께 하루종일 놀다가 어느순간 둘이서 다투고 삐치고..

그리고 나는 울면서 길을 나서고 고모와 언니는 나를 잡으려고 따라 나서고..

어느때인가는 고모가 속이 상하셔서 나를 잡으러 오시면서 우셨다는 언니의 말에 얼마나 후회가 되든지.

1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고모네서 지내면서 서너번은 싸우고 길을 나서고..

무순이는 집에서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 하다가 내가 가면 오빠들과 언니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니 화가 났고 나는 나대로 그런 무순이가 밉고 싫었다.

그러면서도 여름방학을 하던 날, 겨울방학식을 끝내기 무섭게 고모네로 내달렸던건 고모댁이 그만치 편안하고 좋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구비구비의 산길,

논두렁 사이에서 샘물이 흐르고 언니와 함께 다리참을 하며 샘물을 마시던 곳,

커다란 바위가 있어서 한참을 앉아서 쉬다 가던 곳,

너무나 선연한 오솔길과 황톳길, 커다란 바위의 모습과 물봉선화의 청초한 모습, 언니와 아껴가며 먹던 10원짜리 뽀빠이와 라면땅..

깊고 맑은 물을 마시며 기드온의 삼백용사처럼 손으로 퍼서 먹어보기도 하고  무릎을 꿇어서 먹어보기도 했던 샘물,

 

'대태'라는 두마입구의 동네,

그곳의 아이들은 못된 아이들이라 소문이 났기 때문에 그곳을 지날때면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걸어갔던 일,

커다란 당나무에 칭칭감겼던 색색의 천들과 이리저리 마구 던져진 돌들.. 어쩐지 음침하고 음흉해 보이던 곳, 무서운 생각에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곳이기도 하다.

 

대태를 지나서 양지마을에 닿으면 막내고모이자 '튀기고모'가 사신다.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새할머니가 오셨고 할아버지와 새할머니 사이에서 나셨다고 해서 우린 튀기고모라 이름했다.ㅋ

작은고모님네는 감자가 풍성하고 고구마가 풍요로웠다.

얌전하신 고모부는 우리가 가면 담뱃굴에다 감자와 고구마를 구워주시고 여름모깃불에도 감자를 구워주셨다.

고종사촌 동생들인 실근, 경자, 오태, 수도..

모두들 어디선가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으리라.

 

양지마을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막내고모는 하루를 재우지 않고는 큰고모네로 절대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큰고모네 가는 길의 과정이라 당연히 여겼다) 학교마을을 거쳐 큰고모가 계시는 윗마을로 향했다.

마을입구에서 동네 사람들이 이미 우리를 알아보고 '거동댁' 질녀들이라고 수군거리곤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달음질을 해서 맨끝에 있는 고모네로 가곤 했다.

작은 개울속에 나의 땀방울까지 보이고, 매끈하고 차가운 그 물로 밥을 짓고 나물을 씻곤하던 갑순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새롭다.

 

'아이고 우리 옥이 왔나..'라며 흰머리를 날리며 마른세수를 하시며 엉성한 치아를 드러내며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을 보이시던 고모가 그렇게 나를 맞이하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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