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고래
김 형 경
- (주) 창 비 -
나 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몇개월만에 듣는 수화기 저편에서 "여보세요" 단 한마디에 내 상태가 어떤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콧소리를 내지 않아도 코감기인지, 몸살인지를 알고, 씩씩한 웃음을 건네는데도 마음 어디쯤이 저릿저릿한지를 알아내는 사람, 그저 하루쯤 쉬는 휴가가 필요한 것인지, 충분한 잠이 필요한 것인지, 일상의 권태를 이기지 못한 스트레스로 엄살을 부림까지도 적확하게 보고 있는 사람..
사각형의 테두리안에서 정확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계, 검은 가죽줄에는 편안한 주름이 무늬처럼 그려지고 로마숫자가 선명한 주위에는 자잘한 보석들이 박힌 시계속에 당신의 시간이 함께 담긴채 김형경의 신작이 함께 왔다.
선물을 받기전날, 교보문고를 뒤지다 발견하지 못해 미루었던 그 책이 왔다.
꽃 피는 고래,
작가 김형경이 고향을 생각하며 어린날을 추억하며 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고향은 강릉이지만 글의 무대는 울산시라고 한다.
니은이..
열일곱의 고2가 된 소녀,
평범한 여고생으로까지의 환경은 어쩌면 평범한 것 이상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니은이가 슬픔에 빠진 모습과 슬픔을 이겨내려는 부단한 노력이 섬세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모든 이별은 등뒤에서 다가와 뒤통수를 치고 지나가는게 틀림없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갑작스런 부모의 죽음은 어린 니은이에겐 감당할 수 없는 일임에 틀림없다.
부모를 잃은 니은이 찾은 곳은 아버지의 고향인 '처용포'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적,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니은의 아버진 고래사냥이란 노래를 부른다.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어린 니은이 신화처럼 숨을 쉬는게 어떤거냐고 묻자 엄마와 아빠가 대답을 하지 못한채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이담에 크면 알게 된다'는 말을 남긴다.
정부에서 고래를 잡지 못하도록 포획금지령을 내리자 고래잡이를 업으로 삼던 어부들이 처용포를 떠나기 시작하고 처용포에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대신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곳곳에서 흰연기를 내뿜어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래를 잡을 날만 기다리며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를 벗하며 살아가는 장포수 할아버지와 고래잡이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정부에서 고래잡이를 금지하고 처용포에 고래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장포수 할아버지를 설득하지만 그는 끝내 고래잡이 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금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기만 기다리는 일등 고래잡이 장포수 할아버지와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며 자신의 한을 글로 풀어내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슬픔에 싸인 니은을 위로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다려준다.
특히 할머니의 한글배우기 숙제를 보며 니은은 많은걸 깨닫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한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그 한을 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된다.
사람마다 가슴에 슬픔을 간직하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간직하기도 하고, 풀지 못한 분노를 간직하기도 하고, 꾸다만 꿈을 간직하고 있음도 알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한 존재들이다.
내가 슬플 때, 나의 기막힌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화가 나기도 하고
모두가 여상한데 나만이 커다란 슬픔을 당하면 신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기도 하고
단지 내 잘못이 아닌데 유독 나만이 겪는 일에 대해 당황하며 억울해 한다.
어리기만 한 니은이 부모님의 죽음을 이겨내기 위해 잘못된 길로 접어든 친구를 따라가 보기도 하지만 그또한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
슬픔을 이기고 빨리 어른이 되고싶은 니은이가 어른이 되는 핵심을 찾는다.
'엄살, 변명, 핑계, 원망 하지 않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이 그것 같았다.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
그것이 쨍쨍한 황톳길을 땀흘리며 걷는 일이든,
미끄러지는 바위를 한사코 굴러올리는 일이든,
푸른 하늘에 닿기 위해 발돋움하는 영상이든..' (책 256쪽)
어미의 창자는 썩어 문드러져 개도 먹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가슴 한켠에서 선을 긋는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듣는 니은이의 마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와 닿는다.
가족이란 함께 있을 때 가족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건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서 떠날 아이들을 떠올림이고
연로하신 부모님들로부터 해방되고픈 욕심의 끄나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