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시 (波市)
박 경 리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뿌리치고, 이젠 편안하다며.. 붙들지 않고 떠날 수 있음이 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신 박경리선생님,
그분의 빈 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듯이 유작을 구입했다.
土地가 워낙 대작이라 다른 작품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 이미 예전에 선생님의 작품을 읽었던지라 특별히 많지만 않았다.
파시도 예전에 읽은듯 하지만 집에 책이 없어 다시 구입을 했고 처음인듯이 읽어내려갔다.
소설도 유행이 있을까?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작가들이 달라졌나보다.
새롭게 인기를 얻는 작가들의 작품과 옛날 작가들의 글은 내용면에서 다르다. 글의 소재도 다르고 내용또한 다르다.
요즘 작가들의 문체보다는 옛날 작가들의 애틋한 바름과 선과 악의 조화에서 분명한 선이 보이는 것이 나는 좋다.
어느것이 선이며 악인지, 구분조차 애매하고 이미 나 조차도 물들어버린 이 시대적인 더럽힘에 허우적대는 나를 보면서 책만은 예전처럼 결백하기를, 약한 자의 편에서 힘을 실어주기를 바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지나친 이성주의가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근래의 책들을 읽으며 나는 어쩌면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치 내가 세련되지 못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시대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탓도 있으리라.. 인정한다.
파시.
통영의 시장은 늘 어수선하고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 돌아오는 자와 맞이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뱃머리가 소란하고 크고 작은 배들이 오고감으로 시장은 늘 분주하고 요란하다.
안정되지 않은 시장의 분위기와 부둣가의 분위기처럼 통영의 사람들도 어수선하기만 하다.
국가는 전쟁으로 인하여 시끄럽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려는 젊은 남자들은 언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자신때문에 불안하기만 하다.
시장과 전쟁과 부둣가.
살아내기 위하여 처절하게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한권의 책속에 고스란히 담아졌다.
응주와 명화, 수옥, 학자, 학수, 조만섭과 서영래... 등
파도에 떠밀리듯이 피란길에 밀려온 수옥, 여학교를 졸업하고 전쟁통에 부모형제를 잃은채 부산으로 온 수옥은 어딘가 모자라는듯이 어수룩하다. 전쟁을 치르며 겪어야했던 고통들이 수옥을 힘없는 여자로 만들고 어리숙한 여자로 만든다.
서영래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특수를 틈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이가 없다. 그의 눈에 수옥은 좋은 먹잇감으로 다가오고 조만섭의 아내와 작당하여 수옥을 후처로 들어앉힌다.
정이 많은 조만섭이지만 그의 아내 서울댁의 술수에 수옥이 서영래에게 넘어가고 뒤늦게 사실을 안 조만섭이 화를 내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응주와 명화,
어디서나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지키려 애쓴다.
명화어머니의 죽음이 정신병이 원인이라는 이유로 응주의 아버지 박의사는 끝까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명화는 어머니의 병으로 인하여 응주와의 사이에 늘 피해의식을 가진다.
명화는 스스로 잦아듦으로 응주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박의사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두고 우울해하는 명화에게 응주는 짜증이 나고 죽희의 등장에 스스로 자유롭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결국 박의사가 명화를 좋아했다는 말에 명화는 일본으로 밀항을 계획하고 마지막으로 응주와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한평생을 살았다는 명화의 진실을 알고 그제서야 응주는 자신이 명화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으며군대를 택한다.
수옥..
짐승같은 서영래에게 갇힌자 되어 흔적조차 없듯이 살아가는 수옥을 학수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처음으로 사랑을 얻은 수옥과 학수의 짧은 생활,
학수가 군대로 징집되어 가던 날, 수옥은 임신을 한 몸으로 학수의 집으로 들어가 학수를 기다린다.
사랑..
아름답고 애틋한 학수와 수옥의 사랑이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간절한 마음으로 결혼을 원하는 응주와 명화의 사랑이 있고, 자식을 낳기 위한 욕심으로 수옥을 차지하려는 서영래의 사랑이 있다.
아들의 오랜 연인인 명화를 사랑하다는 박의사의 사랑이 있고 문성재를 향한 선애의 일방적인 사랑이 있다.
사랑은 해야할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나누어야 할 상대방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은 이렇게 어수선한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내 마음을 흔들고 때론 분노함이 내 마음속을 휘저을 때도 있었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서로를 축복할 수 있는 세상은 오지 않는 것일까.
통영의 부둣가에는 무심한 갈매기가 날아들고 하얀 파도엔 짠바닷물이 배어들고 휘청거리는 햇살이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