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
장마철이지만 비가 내리는 날보다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까지 닿는 무게가 더 무거운 날이 많다.
후텁지근한 날 속에서도 간간히 얼굴을 내밀어 자신을 각인시키는 햇님과 나뭇잎을 스치듯 살며시 지나는 여름바람이지만 무거운 공기를 들어올린만한 힘은 작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마철이 힘들고 견디기가 어렵다.
차라리 좍좍 그어지는 빗줄기가 견디기 쉬운 것을...
유난히 나는 눈물이 많다.
책을 읽으면서도 흑흑거리며 울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휴지를 옆에다 두고 코를 킹킹 풀어가며 운다. 때론 울음을 그치고 흐느끼는 아이들처럼 한동안 흐느껴 울때도 있다.
요즘 교회에서 초상이 일주일에 세번이 났었다.
장례식 문상을 갔을때도 남들은 국화를 얹고 기도만 하는데 나는 혼자서 휴지로 눈물을 찍고 코를 풀어댄다.
발인예배에 참석하면 모두들 찬송으로 고인을 보내는데 나만 유독 눈물바람을 일으킨다. 찬송은 단 한절도 부르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나를 남들은 신기한듯이 바라보기도 한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사모하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나는 육신의 이별이 슬퍼서 울고 또 운다. 특별히 친하지 않았어도 어쩐지 이 땅에서 그이 모습을 볼 수 없는 사실이, 아니 헤어진다는 사실이 슬퍼서 울고 또 운다.
참 강당지게, 독한 마음으로, 독한 사고방식으로 살아온 날들이다.
자취를 하며 혼자만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자로 잰듯이 생활하며 교회와 회사와 집을 오가며 다른 것엔 거의 마음을 두지 않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자금을 모으고 막내동생의 고등학교 입학금부터 교복까지, 3년동안의 등록금과 졸업앨범비까지 감당하고 서울로 데려운 동생의 전문학교의 모든 과정을 내가 맡았었다.
특별히 월급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수입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단지 절약하고 절약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툭 하면 눈물을 흘려대니 처음엔 남편이 놀랄만도 했겠다.
세현이가 입대한지 2개월이 지나고 3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웬만한 빽이 없으면 갈 수 없는 부대로 자대를 배치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모든 고생이 끝난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되려니.. 그새 2년이 지나려니..그렇게 여겼다.
오늘아침에 세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칠전에 보낸 소포(옷과 운동화와 목욕용품)를 잘 받았다며 다음에는 반바지와 수영복과 물안경을 보내달라고 군인이 아닌 대학생의 목소리로 주고받았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잘 지내라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갑작스런 물기가, 뜨거운 눈물이 내게로 전해진다.
울먹이는 세현이의 목소리에 당황한다. 그냥 끊으면 안될것 같아서 급히 세현일 불러세웠다.
엄마가 그립고 집이 몹시도 그리울 세현이, 끝내 울음섞인 목소리를 참지 못하는 세현일 보며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된다.
힘을 내라며..
잘 견디라며,
엄마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않으냐고..
엄마도 네가 보고싶다고..
너를 위해서 늘 기도한다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니 울음이 걷히고 얼른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남들은 군대가서도 씩씩하게 전화를 한다고 하던데..
주현이도 군대갔을 때 울면서 전화를 해서 나를 울게 하더니..
엄마를 닮아서 눈물이 많은걸까?
너무 유약하고 심약한 아들들일까?
왜 우리집 아들들은 눈물이 이렇게 많을까?
어디가 모자란다는 뜻은 아닐까?
아들들을 탓하기 전에 유난히 눈물이 많은 나를 앎으로 이 모든 것이 내 탓이려니..
남자로서 대범함 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던 내 탓이려니...
얼마쯤의 시간이 더 흘러야 세현이의 목소리가 군인다워질까?
한번이라도 만나고나면 괜찮을텐데 부대의 특성상 면회는 절대불가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눈물을 더 흘려야 할지.
눈물이 마르고나면 내 마음과 내 가슴이 너무나 메말라 황무지가 되어버리면 어쩌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으니 그냥 참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