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개기월식

여디디아 2006. 10. 10. 09:25

 

 

시가 있는 아침

 

 

개 기 월 식

 

 

안 현 미(1972~     )

 

 

사내의 그림자 속에 여자는 서 있다

 

여자의 울음은 누군가의 고독을 적어 놓은 파피루스에 덧쓰는

 

밀서 같은 것이어서 그것이 울음인지 밀서인지 고독인지

 

피아졸라의 음악처럼 외로운 것인지

 

산사나무 꽃그늘처럼 슬픈 것인지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

 

그게 다인지 여자는 눈, 코, 입이 다 사라진 사내의 그림자 속에서

 

사과를 베어먹듯 사랑을 사랑이라고만 말하자,고 중얼거리며

 

사내의 눈, 코, 입을 다 베어먹고 마침내는 그림자까지

 

알뜰하게 다 베어먹고 유쾌하게 사과의 검은 씨를 뱉듯

 

사내를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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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박 10일간의 휴가를 마무리하며 아직도 긴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주현일 두고 출근했다.

가을이 익어가는 날들에 마지못해 나온 휴가에

주현인 조금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다투며 돌아서고, 후회하고 다시 돌아서고,

이제는 끝이다..  다시 시작이다..를 반복하던 녀석의 사랑이 결말을 보인듯 싶다.

 

엄마를 닮아 괴팍한 사내,

군 생활에서도 하루에 한권의 책을 읽을만치 책을 좋아하는 사내,

가수처럼 멋을 부리며 가수처럼 바이브레이션을 섞어가며 가사와 곡을 목젓으로 넘기는 사내,

한 마디의 말에 울컥 성질을 뱉아내는 참을성이 없는 사내..

 

그런 어린 사내를 접어야 하는 여자는

이 가을에 그 사내를 사과씨를 뱉듯이 뱉아버렸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끝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원했던 부모들의 마음을

이쯤에서 깨닫고 여기쯤에서 사내에 대한 연민의 끈을 탁 소리를 내며

놓아버렸으면 좋겠다.

 

농익어가는 가을날에

어디선가 멋진 사내가 다시금 나타나

사과씨를 뱉은 여자의 마음을 감싸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설렘으로, 새로운 눈맞춤으로

새롭게 가을사랑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는 주현이,

아픔을 아픔으로 간직하며 좀 더 성숙한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 잊지못할 사랑때문에 괴로워하며 가슴이 찢어질 듯도 하며

가슴이 저리고 아파서 펑펑 울줄도 알아가는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하는 봄날에

소녀처럼 이쁜 여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사내였으면...

(진옥이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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